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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이 하나 생겨요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이 하나 태어나지요

원래 선인장은 널따란 이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가시가 되었지요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선인장은 가시를 내밀고 사람만큼을 살지요


아픈 데가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 손을 올리면 성자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가시들은 스며서 사람을 아프게 하지요


할 일이 있겠으나 할 일을 하지 못한 선인장처럼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될지를 생각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지요


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2017)>


살면서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삶이란건 너무나도 힘듭니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하고 즐거울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닙니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딸에대하여-김혜진 p.130)"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인생은 오늘도 나에게 아픔을 줍니다. 죽음을 주지요. 그래서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가시'를 만듭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살기위해 '선인장'이 됩니다. 스스로를 죽여, '사람'이 아니라 '선인장'이 됩니다. '넓은 이파리'를 좁고 좁게 만들어 '가시'로 만들어 오늘도 버팁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사람 인(人)자는 잘 알려진대로 서로 기대어 있습니다. 서로 함께하고 의지하고 기대어 산다는 글자입니다. 그런데도 그러기가 힘듭니다.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이 존재 그 자체 때문(p.329)"이라는게,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p.6)"만드는 '사막'이 너무 싫습니다. 하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하고, 내가 존재해야 하니, 그 사실 자체가 너무도 싫습니다. 차라리 다른 관계로 만났다면, 다른 장소에서 봤다면. 하지만 저는 '성자'가 아니고 그래서 살려고 발버둥 치칩니다. 이게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사람으로 살고 싶었지만, 죽어서 선인장으로 산 하루였습니다. '가시'를 세우고, 선인장인지 사람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이 살았습니다. 거나하게 취하여 집에 앉아 문득 생각해봅니다. 넓어지는 사막 한가운데서. 

사라진 아버지를. 죽어버린 친구를. 스스로 그만둔 연예인을. '선인장'들을 생각해봅니다. 까끌까끌하지만. 목이 막히지만. "이만하면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해줘. 웃지는 못하더라도 탓하며 보내진 말아줘. 수고했어. 정말 고생했어."라고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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