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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 여겨 온 나에게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주었다.

나희덕 <속리산에서> (그곳이 멀지 않다. 2004)


한 해를 마무리 하며, 문득 고등학생때가 떠오른다. 고3. 치열하게 살고자 했을때, 그 목표를 오로지 높이 쌓는 것으로 정했다. 스스로 약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오로지 한 길 이외에 다른 길을 생각하는 순간 무너질 것을 알기에. 오로지 집중에서 높이 높이 쌓는 일로 버텼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 길만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결과를 받아들고 아쉬웠지만 스스로 만족했다. 누구에게나 보여줌직한 높이를 적당하게 얻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높이 높이. 최대한 높이 쌓고 많이 하고 안되면 몸으로 떼우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야할 길은, 살아남는 방법은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올해도 버텼다.

올해도 꽤 많은 책을 봤다. 독후감으로는 95권 남기지 않은 책 수 십권, 글로도 남겨보고, 혼자서 끄적이다 지우고. 때때로 시덥지 않은 이야기도 펼쳐봤다. 이 블로그 속에 95라는 숫자로 남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에 부끄럽지만, 95. '숫자'라는 높이가 남았다. 


높이 만으로는 오롯이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더 높이 오를 것이고, 내 능력의 한계도 알고 있다. 살다보니 오히려 높이 쌓는 일이. 멍청하다는 것도 알겠다. 삶은 쌓기만 하는게 아니라, 젠가처럼 밑에서 부터 하나하나 빼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도 중요한 아랫돌부터. 떨리는 손으로 살기위해 스스로 빼내야 한다. 두려움에 가득차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씩 빼야한다. 그 과정이 내 잘못이건, 잘못 쌓은 아랫돌 때문이건, 무너지지 않게 빼내야 한다. 내 차례가 되어서이기도 하고, 남이 강요한 것이기도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잘 빼내야 한다. 내가 살아온 삶. 짧게는 1년, 길게는 수십년 살아온 높이를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쌓는 일보다 뺄 일이 더 많을까 두렵다.

한 해 버텨내며 힘들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 선의에 대한 배신. 최선의 판단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 안타까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떨리는 손으로 무너질려 하는 높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안절부절 한 해를 버텨 왔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언저리. 새해를 다짐하며, 이미 빼낸 아랫돌과 또 살아가며 빼내야 할 아랫돌과 새로이 쌓을 돌과 곧 무너질 것 같은 돌탑을 바라본다. 

그래도 올 해 책과 함께 잘 버텼구나. 내년에도 새로운 책과 함께 살아가자. 아랫돌을 빼더라도 새로운 돌을 쌓고, 높이 가지 못하더라도 깊이(넓게) 가는 것도 삶이 되리라 자위해 본다. 우선은 해보자. 내년 이맘 때. 내가 뭐라고 할지. 그래도 올해 열심히 읽고, 빼내고, 다시 쌓고, 보강하고, 버티고, 울고, 웃고, 배신당하고, 배신하고, 투덜거리고, 뒷담까고, 뒷담당하고, 그렇게 사는거구나. 다만, 열심히 살았구나.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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