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내 삶은 왜 이럴까? 살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 본다. 이다지도 열심히 일하고, 번 돈도 아껴서 가치 있게 쓰고 있건만, 행복한 삶은 항상 먼 꿈일 뿐이다. TV에 나오는 막장 뉴스들을 보며 도대체 우리 사회는 왜 이럴까? 고민해 본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많이 일하며, 손꼽히는 경제 강국임에도, 가장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회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몇 번의 투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바뀌는 것은 없다. 점점 포기할 것만 늘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헬조선’이라고 말한다. 불행은 우리의 일상이다.
여기에 저자는 책 제목으로 답한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급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는 것 역시 생존에 중요하다. 하지만 늘 적응하기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의 세상은 적응만으로 생존할 수 없다. 방법은 새로운 상황을 창출해내고 주도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잘못된 상태를 바꿀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필요한 것은 “단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와 비전이 없을 뿐(p.345)”이다. 저자는 그 용기와 비전을 68혁명과 분단체제 극복에서 본다. 여기서부터 우리나라의 잘못된 현실을 인식해나가야만, “현대사회의 초등교육”을 거쳐 새로운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상상력은 무엇으로 이뤄질까. 아마도 민주주의가 아닐까. 촛불혁명도 이뤄낸 대한민국에서 무슨 민주주의를 운운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이미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국한된다. 저자의 평가대로 대한민국은 정치 민주화가 잘 이뤄진 나라다. 반면 사회, 경제, 문화 민주화 영역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병폐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독일과의 비교를 통해 여러 예시까지 제시해 준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아직도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민주주의는 직장 앞에서 멈춰서고, 약탈적 시장논리 앞에 무력하다. 노조는 악의 축으로 취급받고, 이견을 내고 질문하는 것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파시즘적인 병영문화가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스스로를 검열하고 착취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68혁명의 부재와 분단체계의 한계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68혁명의 영향권에 있지 못하다. 이 시기에 한국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은커녕 가장 억압이 강력해졌다. 분단체계를 골자로 한 반공주의 강화, 독재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적 병영문화는 해방보다 억압의 내면화를 주었다. 주민등록법, 국민교육헌장, 예비군 훈련, 교련 수업들은 한국인들에게 ‘내 안의 파시즘’과 ‘아주 일상적인 파시즘’을 내재시켰다. 그리고 이것들이 한국의 가장 근본적인 생활 문화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까라면 까라. 이런 상명하복의 문화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도 누구나 한국 사람이라면 그렇게 행동하거나 할 수 있다.
이것이 해결 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바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87체제의 성립이다. 하지만 변화의 주역이었던 86세대는 세대적 한계에 따라 이상 사회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의 지평이 협소했고(p.133) 정치 민주화, 즉 지배 세력의 교체만 이뤄냈다는 한계를 지닌다. 분명 그들 탓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울 따름이다. 사회 전반의 권력을 장악한 채, 개혁보다는 정치 게임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386 세대유감>에서 평가한바, 독재를 끝냈지만, 독재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았고, 독재와 싸우다 가장 독재와 닮아버린 세대. 우리는 “3김 시대가 결국 두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나서야 종료된 것처럼, 386 시대가 그들끼리 돌아가며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386 세대유감> p.424)”을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능력은 충분하다고,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비전이다. 이는 개개인이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는 개개인이 강한 자아를 가질 때 가능하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를 이끌어내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인 상상력, 비전을 획득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누구보다 정치적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이란 단어는 매우 위험한 단어다. 심지어 욕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치는 우리의 일상과 매우 관련이 깊다. 현대 사회에서 삶 자체가 정치적이다. 내가 사는 생산품, 내가 보는 글, 내가 말하는 이야기. SNS에 올리는 그 어떤 사진들조차도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다. 다만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책을 덮고 나니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저자의 책 제목은 오히려 역으로 읽힌다. 우리가 비정치, 탈정치를 주창하며 민주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분단체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없다면. 우리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외면한 채 버티기에만 급급하다면, 지금 이대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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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p.6)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입니다. p.7
우리가 이룬 이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요? ...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p.7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라는 근대 사회의 ‘상식’을 헌법 제1조로 가진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헬조선’을 벗어나 유토피아로 진입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p.8)하는 상식적인 나라가 되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p.9
촛불집회가 보여주는 것은 이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취약한지,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p.35
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가 괴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충분히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한 거지요. p.37
사회 민주화 ...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회 각 영역에서 개별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까지 자치적인 운영을 하고, 자율적인 결정을 하느냐 하는 정도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43) ... 구성원들의 의사가 어떻게 민주적으로 모아지는가 하는 것, 즉 조직(p.44)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조직 내부에서 형성되는가 하는 것이 사회 민주화의 요체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 민주화의 기본 원리는 ‘구성원들의 자치’입니다. p.45
경제 민주화 ... 기본적으로 경제 기구, 특히 기업 안에서 과연 어느 정도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가를 경제 민주화의 기준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가장 민주화가 안 된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기업입니다. ... 한국 기업에서는 그 소유자가 그야말로 전제 군주처럼 행동합니다. p.50
“우리 시민들은 국가시민으로서는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주권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경제시민으로서는 노예로 산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볼프강 미슈니크(1976년 노사공동결정제 법안을 대표 발의, 자유민주당(FDP) 원내대표)가 법안을 발의하면서 한 연설 p.57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 민주화란 바로 이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하지요.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p.61
베트남전쟁을 보면서 도덕적 충격을 느끼고, 미소 간의 핵무기 경쟁을 보면서 부조리한 세계를 체험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 전체를 부정하고 기성 가치 전체를 회의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치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은 기실 거대한 억압의 체계이고,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모든 형태의 억압(p.72)으로부터 해방’이라는 68혁명의 핵심 구호가 탄생하게 됩니다. p.73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개그가 약자를 공격하는 형태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병리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p.89
‘모든 지배적인 지식은 지배하는 자의 지식’이라고 보기 때문에 지식 그 자체보다는 특정 지식이 지배적인 지식이 된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 p.90
많은 미래학자들이 동북아시아가 21세기에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의 현실은 어떤가요. 지금 이 지역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봅니다. 일본의 과거, 한반도의 현재, 중국의 미래가 그것입니다. / 일본은 많은 장점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묶여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시아에서 어느 나라도 일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현재’란 금방 이해하시겠지요.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동북아시아 전체가 물리적으로 소통이(p.107) 안 되는 형국입니다. 중국의 ‘미래’가 뜻하는 것은 미래의 중국이 패권주의로 나아갈 것이라는 공포를 주변국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p.108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베르볼트 브레히트 p.130
결국 문제는 민주화 이후 86세대가 보인 행보입니다. 그들은 정치 게임에 능한 반면, 사회개혁에 무능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86세대와 독일의 68세대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p.135) ...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86세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입니다. ... 그들의 상대는 언제나 외세에 기대어 기회주의적으로 사적인 이익만을 탐하는 수구 보수들이었습니다. ... 항상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p.137
68혁명의 부재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시대착오적인 현상들 ... 첫 번째는 인권 감수성의 부재(p.141) ...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정말 부족 ... 두 번째 현상은 소비주의 문화(p.143) ... 소비를 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발전하고, 잘사는 나라가 된다는 논리 ...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논리만이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참으로 놀라운 사회 p.146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 ?테오도르 아도르노 p.148
‘성 정치학’이 탄생 ... 깊은 죄의식을 내면화한 인간일수록 약한 자아를 갖게 되고, 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일수록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죄의식이라는 성적, 심리적 문제가 권위주의라는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지요. / 이를 요약하면 인간의 성을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그 개인은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권위주의적 성격’이론이라고 합니다. p.152
세 번째 특징은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p.156) ... 살인적인 경쟁은 승자 독식의 논리와 연결되어 권위주의 문화를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p.157
교육, 즉 에듀케이트‘라는 말은 ’밖으로(e-) 끌어낸다(duc-)’는 뜻입니다. ... 고유한 재능은 사람 안에 이미 다 들어 있고, 그걸 끌어내는 게 교육이지 ‘지식을 쳐넣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교육은 사실 반교육에 가깝습니다. p.159
우리 한국인은 경쟁을 마치 정의의 유일한 기준인 양 절대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의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여기서 독일과 한국의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독일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는 반면, 한국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려고 합니다. p.165
한국 사회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살 사회’로 굳어진 것은 바로 한국 사회가 ‘자기착취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사회적, 심리학적 구조를 정확히 투시해야 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부단히 전가하는 지배자들의 기만적인 논리를 내면화하고 신념화해서는 이 사회를 변혁할 수 없습니다. p.169
소외의 문제(p.176) ... ‘배제’라기보다는 ‘전복’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p.177) ... 대상이나 현상이 본래는 ‘나’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나’의 것이었는데, 이것이 점점 ‘나’로부터 멀어져 낯설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이제는 역으로 ‘나’를 지배하고, ‘나’는 그것에 종속되는 전도 현상 p.178
여성해방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은 68혁명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제야 한국에서 그런 현상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p.181
유럽과 서구의 흐름을 보면 어느 사회에서나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더 ‘진보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들이 어느 사회에서나 성적 억압과 사회적 억압, 즉 이중의 억압을 당해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고통과 억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저는 ‘진보’란 정치적 좌우 개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겪은 고통과 억압을 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좌파라는 겁니다. 이에 반해 보수는 대개 고통과 억압보다 권력과 질서에 민감하지요. p.182
한국 사회에서 12년 동안 교육을 받고, 3년 동안 군대를 갔다 온 저 같은 남성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가능한가? 제 경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p.186
지금까지 인권 감수성에서부터, 소비주의, 권위주의, 자기착취와 소외, 성도덕 문제에 이르기까지 68혁명의 부재가 한국 사회에 드리운 ‘그늘들’을 짚어보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서구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고 실천적으로 극복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념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비유컨대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가 50년 전에 졸업한 ‘현대 초등학교’를 아직도 마치지 못한 셈입니다. 그들과 반세기의 격차가 생겨난 것이지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제기하는 ‘헬조선’ 담론이나 ‘꼰대’ 담론은 바로 우리가 제대로 현대사회의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 그럼 한국 사회는 왜 이런 지체된, ... ‘예외 국가’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가 거쳐온 독특한 역사적 경로 때문입니다. 식민 지배와 군정, 분단과 냉(p.188)전, 내전과 반공주의, 군사독재와 민주화라는 격변의 역사 속에서 생겨난, 대한민국만이 거쳐 온, 아주 독특한
역사적 경로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분단체제는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를 아주 기형적인 사회로 만든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p.189
인류의 역사는 해방의 역사였고, 모든 해방은 자기해방이었습니다. p.215
독일의 가장 우파 정당이 한국의 가장 좌파 정당보다 더 좌파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 정도로 한국의 정치 지형은 극단적으로 우경화되어 있습니다. p.229
한국은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과두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p.234
보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입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것이 보수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개인을 공동체보다 더 중시하는 쪽은 자유주의이지요. 그래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구분할 때 결정적 기준이 개인을 우선하느냐, 공동체를 우선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 보수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로 가장 근원적(p.235)인 공동체로서 민족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민족주의자인 거지요. ... 다음으로 보수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역사입니다. 전통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과거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보수의 자세이지요. ...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문화도 중시합니다. 세련된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품위와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p.236
수구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외세와 손잡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무리들입니다. p.237
고려대 김우창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턱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너무나 깊은 모멸감을 내면화하고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p.240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가진 나라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권력을 분점해 왔습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오늘날 정치 민주화와 경제성장,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 된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p.245
이 기형적인 국가, 이 부조리한 사회를 만든 것은 바로 남한과 북한의 냉전체제입니다. (p.262) ...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냉전체제 극복이라는 얘기입니다. p.263
독일 통일은 흡수 통일이라는 한국인의 잘못된 인식은 언제나 역사를 승자의 관점에서 보는 관성에서 나온 오류입니다. 현재 독일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정치 사회적 변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오류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두 번째 사항은 독일 통일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었다는 주장입니다. p.293
동도의 몰락은 사회주의의 몰락이자, 낙관적 이난관의 몰락을 의미합니다. p.303
세 번째 오해는 독일이 우리와는 달리 통일 환경이 훨씬 우호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사실 동독과 서독은 서로 통일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p.305
한반도의 통일이란 지난 100년 동안 있었던 다양한 사회주의의 실험 중에서 가장 권위적인 사회주의 국가와, 지난 세기의 수많은 자본주의 사례 중에서 가장 약탈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합쳐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통일은 고질적인 병을 앓고 있는 두 국가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저는 한반도의 통일은(p.319) 남북이 자신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민주화하고, 동시에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것이 통일의 사회적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p.320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p.328) 안 된다’는 공동의 인식입니다. p.329
우리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상상력이 너무도 빈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종속변수로 보는 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p.344)리가 움직임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바뀌는 상황에 무조건 적응하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잘못된 상태를 바꿀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와 비전이 없을 뿐입니다. p.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