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은 칼보다 강하다(Calamus Gladio Fortior)”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말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칼들이 흥하고 쇠해서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펜과 글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맥아더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람들은 자동화기의 위력을 보지 못한 작자들이다.”라고 말했듯, 죽음 앞에서는 펜이든 칼이든 마찬가지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데 칼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지만, 창조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칼보다는 펜이 더 용이하다. 펜과 칼 모두 살아가고, 살아남기 위한 도구이지만 펜은 칼보다 살아남는 힘이 좀 더 강하다. 아마도 칼이 공포라는 즉흥적인 인간의 감정에 의존하지만, 펜은 글을 통해서 그 감정이 보존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제목 그대로를 위해 펜을 든 여성들의 이야기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역사적으로, 지금도 압도적인 비율로 펜과 칼은 남성의 도구다. 하지만 여성 역시 사람이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자신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게 당연하다. 단순하게 기계적인 평등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압도적인 불평등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 펜을 든 여성들의 이야기는 소중하다.
단순한 평등이 불만스럽다면, 다리가 날개가 2개인 이유를 생각하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기울기를 고려하지 않으면 평평하게 만들 수 없다. 그래도 불편하다면, 성별을 생각지 말고 읽어보자.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보자.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삶이다. 불편한 당신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고통과 기쁨, 꿈과 행복을 추구하는... 칼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펜을 쥐고 세상을 감내했던 이야기로만으로 봐주자.
그것마저도 싫다면 어쩔 수 없다. 다만 저주하지 말기를, 증오하지 말기를 바란다. 여성이기 이전에 사람임을, 최소한의 예의를 기대한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듯, 분노와 증으로 흥한 자는 그것으로 망한다.
글로써 살아남고자 했던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나 역시 결국은 글로 먹고 살며, 글 덕분에 살아남은 입장에서 영원한 동지일 수 있기를. 그들의 발자취를 기억해 둔다. 훗날 다시 만날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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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자는 온전히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글을 쓰면서. p.49
“당신을 괴롭히는 것 뒤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면 항상 위안이 된다.” - 앤 카슨 p.94
“신화는 특별한 방식으로 인간적인 것,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문학에서 문제 삼고 있는 그 인간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도록 강요합니다. ... 우리는 왜 인간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가. 왜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계속해서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가?” - 크리스타 볼프 p.163
“부디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수전 손택 p.201
”소설이란 삶과 생명의 문제이며, 삶이 지속되는 한 추구해야 할 무엇이지요.“ - 박경리 p.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