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는가.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서 진리를 찾고,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결론은 명확하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특성, 유한한 점은 일정한 패턴을 갖게 한다. 역사의 패턴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패턴이다.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다. 강대국의 흥망사나 전쟁사 등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욕심이 인간의 능력만큼 발휘될 때, 강대국이 만들어지고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다. 그리고 강대국과 문명이 능력 이상의 욕심을 부릴 때, 어김없이 혼란과 전란의 시대가 도래했다.
병자호란 역시 마찬가지다. 양반 사대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차지하기 위한 욕심으로 현실을 무시했다. 명청 교체기, 혼란의 시기에 현실적인 인식이 중요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정세에서 군사력 없는 대의명분은 욕심이다. 대의명분은 능력이 될 때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은 약자의 위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 이를 무시한 결과는 삼전도에서 나타났다.
사회가 사람을 만들지만, 사람 역시 사회를 만든다. 병자호란 당시의 명분론에 휩싸인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 개개인이 벗어날 수 없다. 반정을 통해 집권한 인조와 그 세력들은 더더욱 명분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음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명분만으로 안된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라면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썩었다고밖에 판단할 수 없다. 병자호란은 그 썩은 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부각하기 위해서 다양한 인물들을 창조했다. 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명분이 현실을 잡아먹을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리더의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리더들의 모습은 미화되었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이라도 다를까? 남한산성에서의 비극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우리나라에서, 각자의 조직과 회사에서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 실력 없는 명분, 명분에 끼워 맞추는 현실 인식, 인간의 욕심의 끝에는 삼전도가 재현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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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정의롭지 못하게 살아온 세월이 정의롭게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길다. p.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