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아는 어렸을 때 아빠와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머리를 크게 다친 그녀였지만, 다행히 뇌에 티타늄을 심어 평범한 아이처럼 살아갈 수 있었다. 티타늄을 심은 이후 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진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후 성인이 된 알렉시아는 모터쇼 스트리퍼로 살아가며 나름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도발적이고 뇌쇄적인 매력으로 인해 팬이 여럿 있을 정도였고, 심지어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남자까지 있었으나 알렉시아는 그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그러고선 모터쇼의 자동차와 기이한 성관계를 맺은 뒤, 알렉시아는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성향이 폭발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 10여 년 전 아들 아드리앵을 잃어버린 뱅상을 만나게 되면서 알렉시아의 삶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한다.
영화는 어린 알렉시아와 아빠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운전을 하는 아빠의 바로 뒤에 앉아있던 알렉시아는 틀어놓은 음악을 허밍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는데, 아빠는 딸의 그 소리가 영 거슬리는 듯했다. 그래서 볼륨을 높였지만 알렉시아의 소리는 더 커졌다. 그러다 알렉시아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운전을 하는 아빠가 앉은 시트를 발로 차기 시작했고, 하지 말라는 말에도 듣지 않다가 급기야는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놀란 아빠가 알렉시아를 제지했지만, 안타깝게도 곧바로 사고가 나고 말았다. 아빠는 내내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기에 다치지 않았으나 직전에 벨트를 풀어버린 알렉시아는 크게 다쳐 뇌에 티타늄을 심는 수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알렉시아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오른쪽 귓가에 기이한 모양의 흉터가 생겨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게 됐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것보다 당황스러웠던 알렉시아의 반응은 차에 대한 감정이 애착을 넘어 사랑으로까지 보였다는 것이다. 차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마치 포옹을 하듯 꼭 끌어안았고,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머리에 심은 티타늄으로 인해 동족(?)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이 솟아난 듯 보였다.
차에 대한 애정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져 알렉시아는 모터쇼 스트리퍼로 일하며 돈도 벌고 욕구도 충족하는 생활을 해나간다. 그런 일상에 변화가 생긴 건 사랑 고백을 한 팬이 무턱대고 그녀에게 키스를 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그의 입맞춤을 받아주었지만 알렉시아는 뭔가 불쾌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래서 긴 머리를 핀처럼 고정시켜놓던 막대기를 남자의 귀에 찔러 넣었다. 남자는 구토를 하며 죽어버렸고, 알렉시아는 자신에 몸에 남은 남자의 이물질을 씻기 위해 샤워장을 찾았다가 차와 섹스를 하게 됐다.
이때부터 영화의 방향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헤아리기 어려워졌다. 알렉시아가 차와 섹스를 하던 장면은 현실인지 꿈인지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알렉시아가 살인한 후에 아드레날린이 폭발해 환각 증상을 보인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부터 알렉시아의 배가 불러왔고, 생식기관에서는 기름이 흘러나왔기에 그건 진짜 섹스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동차와의 섹스로 존재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뱃속에 자리 잡은 게 일단은 걱정이었으나 그 사건 이후 알렉시아의 본능인지 불안감인지 뭔지 모를 것이 그녀를 지배한 게 더 우려스러웠다. 사랑 고백을 한 남자를 죽인 건 우발적인 사고였으나 이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던 동료 쥐스틴을 살해했고, 그녀와 함께 사는 두 남자와 한 여자를 죽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알렉시아는 집에 가서 살인의 흔적을 태우다가 부모를 불구덩이에 가둬 죽이기까지 한다.
그로 인해 알렉시아는 몽타주가 붙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도망치던 그녀는 우연히 10년 전 실종된 아드리앵이란 소년이 현재 어떤 얼굴이 되었을지 가상한 사진을 보고 자신과 닮았다는 걸 느끼고 그 아이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래서 아들을 잃은 구급 대원 뱅상을 만나게 된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영화 오프닝에서 어린 알렉시아와 아빠의 모습을 보며 서로를 향한 애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부터 묘했다. 너그럽게 생각해서 알렉시아가 개구진 면이 있다고 여길 수 있었으나 아빠는 딸의 행동을 장난 정도로 여기지 않는 듯했다. 정말이지 짜증이 가득 차오른 표정이었다. 그러다 사고가 났고 아빠는 당연히 딸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표정에서 걱정보다 큰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불편하고 조금은 꺼려지는, 보통의 아빠라면 딸에게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었다. 어쩌면 알렉시아는 어렸을 때부터 조금은 남다른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사고가 나 티타늄을 머리에 심게 됐고, 그로 인해 그녀의 남다른 성향이 차에 대한 애정이라는 기이한 형태로 발현된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성인이 된 이후에 알렉시아의 기이함이 더욱 강해졌는지 아빠와는 서로를 투명인간으로 대했는데, 이때부터 알렉시아가 가족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은 존재라는 게 느껴졌다. 자식이 어떻든 부모란 대체로 아이를 감싸 안기 마련인데 알렉시아의 아빠는 딸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고, 손을 대는 것조차 불쾌하게 여기는 듯했다. 부모조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렉시아가 여태껏 느낀 거부감이 폭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로 애무하는데 아프다고 화를 낸 쥐스틴을 비롯해 그녀의 친구들까지 모조리 죽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 부모조차 제 손으로 죽음에 밀어 넣었다.
불을 내서 부모를 죽인 이후 구급 대원 뱅상을 만난 건 마치 필연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뱅상은 아들을 잃고 아내까지 곁을 떠나 혼자 남아있었다. 함께 일하는 구급 대원들이 뱅상을 대장으로 모시고 있었지만 그는 외롭고 고독했다. 그러다 범죄자로 수배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 행세를 하는 알렉시아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뱅상 역시 묘한 기운을 풍겼다. 분명 그에게는 뭔가가 있었는데 그때까지는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다. 알렉시아를 아들이라 믿고 함께 지내며 다른 구급 대원에게도 소개해 줬지만, 알 수 없는 꺼림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뱅상 또한 알렉시아처럼 기이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등장한 한 장면으로 유추한 것인데, 뱅상은 불에 대한 욕망을 가진 게 아닌가 싶었다. 영화 중반에 화재 시뮬레이션을 할 때 서랍장 안에 작은 아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불에 탄 환영 같은 게 뱅상의 눈에 보였다. 형체가 명확하게 보이질 않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후 등장한 뱅상의 아내가 한 말과 연결시켜보면 아들 아드리앵은 죽었으나 어떤 이유로 대외적으로 인정할 수 없어서 실종 신고를 한 듯했다. 불에 대한 욕망을 가진 뱅상과 불에 타 죽은 아들이라는 가정을 연결 지으면 기묘한 분위기가 이해가 됐다.
그러다 뱅상은 알렉시아를 만나 아들 아드리앵으로 여기게 됐고, 그 역시 알렉시아와 비슷하게 가족을 비롯해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라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는 구급 대원 중 한 사람만 있는 그대로의 그를 옹호하고 있었다.
이 기이한 두 사람의 관계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던 건 알렉시아의 배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낳아준 부모, 아내나 연인에게조차 외면을 당하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이들은 평범의 범주를 넘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갔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여자든 남자든, 기이한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든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저 외면당하며 외로웠던 자신의 곁에 머물러주는 존재라는 것에 안도했다.
뱅상을 옹호하던 직원이 알렉시아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을 무시하다 못해 다시는 입을 열 수 없게 만들었을 만큼 그에게는 그녀의 존재가 절실했다. 그리고 알렉시아는 변한 외형으로 인해 타인이 그녀에게 "정의로운 남자" 같은 새로운 프레임을 씌우며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는 것보다 그저 자신이 선택한 대로 아들 역할만을 해내며 뱅상의 곁에 머무는 게 이제는 편해졌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거부당하던 이들의 가련한 연대였다. 그랬기에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만들며 기이하게 탄생한 존재까지 말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한해 걸러 열리게 된 제7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2017년 영화 <로우>로 굉장한 충격을 안겨준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두 번째 영화였다. 감독의 전작을 감상했을 때는 물론이고 아직까지 몇몇 장면들이 기억날 정도로 그만큼 강한 작품은 본 적이 없기에 이번 영화 역시 조금은 우려스러웠다. 짧은 시놉시스에 표현된 기이한 욕망과 칸영화제 사상 가장 놀라운 황금종려상이라는 소식이 걱정 반, 기대 반을 갖게 했다. 역시나 영화는 중반까지 놀라움을 안겼다. 특히나 초반에 강한 장면들이 있어서 집중하게 만들었다. 감독의 머릿속에는 뭔가 독특한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머리에 심은 티타늄과 자동차를 성적으로 연결 지을 사람은 드물 테니 말이다.
아무튼, 초반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설정과 장면으로 시선을 잡아끌었으나 뱅상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새로운 관점으로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자극적인 설정은 차치하고 알렉시아와 뱅상의 관계성에 집중하면 조금은 슬프고 안타까운 연대라 느끼게 했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영화지만, 내게는 외면당한 이들이 서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영화적 과장을 독특하게 활용한 듯싶다.
알렉시아를 연기한 아가트 루셀은 이 영화가 첫 장편 데뷔작이라고 한다. 강렬한 캐릭터로 성별과 기계를 넘나드는 연기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데뷔작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상황에 따라 얼굴이 완전히 달라지는 배우라 앞으로의 연기가 더 기대가 된다.
올해 본 영화 중에 여러 의미로 가장 놀라운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본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