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연극배우 엘리자베스는 공연 도중 갑자기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어증으로 인해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담당 간호사로 배정된 알마를 만난다. 알마는 간호사가 된 지 이제 막 2년 차에 접어들었고, 약혼자와 함께 할 미래를 꿈꾸는 긍정적인 여인이었다. 알마는 의욕에 넘쳐 엘리자베스를 낫게 해주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녀의 실어증은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엘리자베스의 담당 의사가 그녀에게 병원을 떠나 한적한 자신의 별장으로 요양을 떠나라고 제안한다. 엘리자베스를 위해 간호사 알마도 동행할 수 있게 해주겠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두 여인은 삭막한 병원에서 벗어나 바닷가의 바람을 맞으며 별장에서 얼마 동안 머무르게 된다. 그러다 알마는 말이 없는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굉장히 독특했다. 네거티브 필름으로 영화의 움직임을 보여줬고 동물의 피를 짜내거나 사람 손바닥에 못이 박힌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죽음에 이른 듯한 사람들이 이불을 덮고 가만히 누워있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뒤이어 예쁘게 생긴 한 소년이 등장해 어떤 여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을 보여줬다. 알 수 없는 의미들로 가득했던 오프닝이었다.
그 후에는 곧바로 알마와 엘리자베스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켰다. 엘리자베스에게 갑자기 나타난 실어증은 그 어떤 의학적 요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심리적인 이유였을 테지만 그녀가 말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처방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그 점 때문에 의사는 알마를 엘리자베스의 전담 간호사로 배정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알마는 젊고 건강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약혼자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기도 했다. 엘리자베스가 말을 하지 않아서 그녀의 개인적인 생활이 어떤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보이는 것만으로는 알마와 반대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알마의 밝고 활달한 에너지를 통해 엘리자베스의 부정적인 면이 자연스레 치유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는 조금이나마 상태가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로 인해 의사는 그녀에게 새로운 환경을 주게 됐고, 더불어 알마 역시 함께 지내도록 했다.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엘리자베스는 병원에 있었을 때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곁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알마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반응을 보였고 때로는 웃으며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알마가 약혼자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은 후 엘리자베스는 의사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밀봉하지 않은 편지를 알마가 읽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는 한순간에 나빠져버리고 말았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알마가 편지를 읽기에 앞서 등장한 내용은 그녀가 약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 그것도 소년이라 부른 아이와 열정적인 섹스를 하고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알마는 아마도 그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며 혼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엘리자베스와 함께 지내며 가까워졌다는 특수한 상황이 알마로 하여금 그 비밀을 털어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알마는 꿈인지 환상인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났는지 모를 일을 겪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 사건이 일어났다. 엘리자베스는 알마의 다정하고 친밀한 모습을 즐거워하며 우습게 여겼다. 알마 입장에서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마는 당장 그녀에게 따지기보다는 지켜보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여태껏 보여준 알마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 조금 놀라웠다. 두 사람 사이의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절정에 이르자, 알마가 폭발을 하는 바람의 약간의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때 엘리자베스는 짧은 한마디의 말을 내뱉었다. 그 후 알마는 이전까지 보여줬던 긍정적이고 활달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면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던 별장에 한 남자가 등장하면서 알마와 엘리자베스의 관계를 확신하게 만들었다. 남편인 그 남자가 알마를 엘리자베스라 부르며 결혼 생활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알마는 처음엔 자신을 엘리자베스와 혼동하는 거라 여겼지만, 이내 그 남자의 아내처럼 자연스레 행동했다.
그가 떠난 뒤에 알마와 엘리자베스가 마주 앉아 결혼과 임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보며 두 사람이 실은 동일 인물이지만 분열된 자아라는 걸 보여줬다. 엘리자베스가 겪은 아이와 모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알마에게는 부정을 저질러 임신이 되었던 걸로 나타났다. 결혼을 했지만 일에 더 충실했던 엘리자베스와 안정적인 가정을 꿈꾸던 알마의 상반된 모습은 두 가지 갈망이 공존하는 거라 느껴졌다. 그로 인해 엘리자베스와 알마는 분열이 되어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걸 보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감상한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쓰여 익숙한 페르소나라는 단어의 제목을 통해 영화를 보기 전에 유추할 수 있게 했지만, 정작 내용은 조금 난해하게 다가왔다. 후반에 비밀이 밝혀지긴 했지만 보고 이해한 게 맞는 건지 조금은 확신하기 어려운 감이 있다. 아무래도 초반부터 독특한 영상으로 시작되어 어려울 거란 생각을 가지고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영화의 제목 <페르소나>가 어떤 의미인지는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