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취해 춤을 추는 클럽에서 한 여자가 만취된 채 소파에 기대앉아있는 걸 한 무리의 남자들이 본다. 그들은 곧 쓰러질 것 같은 그녀를 보며 당연하다는 듯 저질스러운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그건 단순히 농담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세 남자 중 제일 점잖아 보이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가 괜찮냐며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핸드폰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그녀를 위해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택시 안에서 남자는 마음을 바꿔 자신의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자는 음흉한 속셈을 드러냈고, 그녀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택시 기사에게 자신의 집 주소를 말했다. 집에 도착한 후, 남자는 취한 그녀에게 술을 건네며 키스를 하기 시작했고 이내 침대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목적을 이루려고 했다. 여자가 거부를 하는데도 남자는 그녀를 취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여자가 술에 전혀 취하지 않은 멀쩡한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일으키곤 그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케시는 낮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가끔씩 밤에는 클럽이나 술집에서 남자를 만나 집에 따라가선 겁을 주곤 했다. 술에 취한 여자에게 추잡스러운 욕구를 가진 남자들에게만 그런 행동을 하곤 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집에 돌아온 후 그녀는 몰래 숨겨둔 수첩에 그날 엿을 먹인 남자들의 이름을 적어두곤 했다.
케시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밝혀지진 않았어도 소개된 줄거리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기에 짐작할 수 있었다. 케시는 어렸을 때부터 절친이었던 니나와 함께 의대에 가는 꿈을 이루었지만, 친구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이렇게 남자들에게 소소한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니나가 당했던 집단 성폭행에 대항하는 복수였고, 술에 취한 여성을 향한 일부 남자들의 일차원적인 욕정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초반부터 보여준 케시의 용감무쌍한 행동이 너무 무모하게만 보여서 걱정되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세상엔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신체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힘에서 큰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위험에 처하면 도와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이해는 했지만, 그녀까지 잘못될까 봐 우려됐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보다 분노가 앞서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 등장한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여자를 향한 시선에는 오로지 한 가지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술집에서 남자들이 그러는 건 알코올이 들어갔으니 본색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고, 아주아주 너그럽게 여길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남자의 집에서 나와 옷매무새를 추스르지 못하고 길을 걷던 케시에게 근처 공사장 인부들은 자연스럽게 추잡한 농담을 했다. 영화 중반 이후 길 한가운데에 차를 세워놓고 감정을 추스르던 그녀에게도 뒤차 운전자는 성적인 욕을 섞어가며 화를 냈다. 케시가 사는 세상에는 이런 시선이 당연해서 너무나 화가 났다.
그런데 입만 더러운 그런 인간들은 욕을 듣는 상대 여자가 당연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무반응이거나 혹은 얼굴이 벌게져서 울거나 화가 나도 참으려는 여성의 반응에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성격의 케시가 아무 말 없이 혹은 눈으로 욕을 하면서 바라보거나 남자들이 할 법한 위협을 가하면 금세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비겁하고 졸렬한 인간들이었다.
이런 케시 앞에 같은 의대에 다니던 라이언이 나타나면서 그녀가 본격적으로 복수의 길에 접어들게 됐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먹은 건 아니었다. 라이언은 케시를 학교 다닐 때부터 좋아했다고 말하며 데이트를 하고 싶어 했는데, 그녀는 단칼에 거절을 했다. 퇴짜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아온 라이언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는지 두 사람은 데이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라이언의 행동은 술집에서 만난 그들과 별다를 게 없는 노선으로 향하는 것 같아 케시는 실망하고 만다. 그러나 왠지 라이언에게는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 케시는 그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나중엔 부모님에게 소개를 해주기도 한다.
라이언에게서 알의 이름과 그가 곧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서 케시는 복수심에 불이 붙었다. 그래서 그녀는 알의 SNS 계정을 찾았고 댓글을 단 사람 중 메디슨이라는 여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오자 곧바로 복수 계획에 들어갔다. 메디슨과 딘 워커, 알이 케시의 복수 대상이었다.
영화에 등장한 남자들이 워낙 쓰레기들 뿐이라 나중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같은 여자가 그러는 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술에 취했으니 그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지 않냐는 둥, 미래가 창창한 남자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는 둥의 말은 궤변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친구, 가족, 자식이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싶었다. 그래서 케시는 당연히 똑같이 당해보고 뭐가 잘못됐는지 느껴보라는 듯 복수를 했다. 너무 통쾌했었는데 그녀가 같은 여자에게까지 그렇게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는 게 밝혀져서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너무 복수에만 매달려서 자신의 인생은 제대로 살지 않는 듯한 케시는 어느 순간 모든 걸 멈추려고 했지만, 이내 새로운 비밀이 밝혀져 역시나 이 영화 속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걸 보여줬다. 정말이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진짜 타깃인 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앞만 보고 달려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결말로 흐르지 않았다. 통쾌하게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복수를 바랐는데 그게 아니라서 너무 당황했다. 제발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시는 만만히 볼 여자가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보여줬기 때문에 모든 변수를 생각하고 준비해두는 철저한 모습을 보였다. 너무 다행이면서도 안타까웠지만 그렇게라도 이뤄내고 싶었던 복수였다는 게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런 일은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모 대학의 의대생 사건이 연상되기도 했고, 잊을만하면 뉴스에 등장하는 집단 강간 사건도 떠올랐다. 아직 철모르는 10대라고, 남자들은 그럴 수 있고 술을 마시면 "실수"할 수도 있다고, 그리고 앞날이 창창한 남자라서 이번만 봐주고 넘어가자는 식의 개소리들이 난무한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들은 어려서, 술을 마셔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집단 성폭행 같은 범죄는 저지를 수가 없다. 제발 이런 개만도 못한 인간들에 대한 처벌을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똑같이 복수하는 케시의 활약이 돋보여서 중반까지 통쾌함을 느꼈다. 케시에게 당한 인간들은 자기 입장이 되어야만 뭐가 잘못된 건지 깨닫는 한심한 족속들이었다. 그런 단순무식한 인간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방법은 그것뿐이라 참으로 답답했다.
케시로 출연한 캐리 멀리건의 연기가 좋았다. 호감이 가는 배우지만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니라서 본 작품이 몇 편 되지 않는데, 이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이 좀 안타깝긴 했지만 다양한 변신을 보여주며 복수의 화신을 연기했다.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는 범죄를 너그럽게 여기는 현실 속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깨닫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