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출가 겸 배우인 가후쿠는 연극제가 열리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출장을 갈 예정이었다. 아내 오토와 헤어지기 아쉬워 애틋하게 인사를 하고 차를 몰고 공항에 도착했더니, 연극제 측에서 연락이 왔다.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결항이 될 거라며 내일 와 달라는 메시지였다. 헛걸음을 하게 된 가후쿠는 공항 근처 호텔보다는 집으로 가는 선택을 했다. 가후쿠는 집 문을 연 순간부터 들려선 안 될 소리를 듣게 된다. 혹시나 싶어 발소리를 죽이고 거실로 들어갔을 때, 오토가 소파에서 웬 남자와 성관계를 하며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눈과 귀로 확실하게 확인한다. 가후쿠는 그 자리를 피해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고, 이후 오토에게 그 일에 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가 아침에 집을 나서는 가후쿠에게 오늘 돌아오면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무슨 얘기를 할지 왠지 알 것 같은 예감에 두려워진 가후쿠는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떠돌다 해가 다 저문 밤이 되었을 무렵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선 가후쿠의 눈에 들어온 건 쓰러져 있는 오토의 모습이었는데, 아무리 불러도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고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토는 지주막하출혈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2년 뒤, 가후쿠는 여전히 아내가 녹음해 준 연극 대사 테이프를 들으며 운전을 하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대되어 두 달간 그곳에 머물게 된다. 연극제 측은 이전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관계자에게 드라이버를 붙여줘야 한다며 가후쿠에게 전속 기사 미사키를 소개해 준다.
영화의 시작은 가후쿠, 오토 부부가 침대에서의 부부관계를 끝낸 뒤 어떤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오토는 문득 생각난 이야기가 있는 듯 가후쿠에게 들려줬다. 한 여학생이 조퇴를 하고선 좋아하는 남학생의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자신의 물건을 두고 오고, 그의 물건을 가지고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부부의 섹스가 끝난 뒤 문득문득 이어지곤 했다. 처음엔 그저 극작가인 오토의 상상력이 발휘된 이야기라고 여겼으나 후반에 다시금 등장해 메타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 초반엔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야기보다 가후쿠와 오토의 관계에 더 집중했었다. 가후쿠는 연극 연출가 겸 배우로 명성이 높았고, 방송 작가인 오토 역시 남편 못지않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너무나 완벽한 부부였지만, 가후쿠가 오토의 외도를 목격한 이후 애정이 가득했던 그들의 관계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4살 때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 기일을 보내고 온 날이 그 기점이었다. 녹내장으로 인해 운전대를 오토에게 맡겨야 했던 가후쿠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왠지 모르게 이전과는 달리 조금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토의 몸에 탐닉했고, 두 사람은 이내 문제의 소파에서 섹스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항상 있는 일인 듯 오토가 다시금 남편의 몸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오프닝에서 했던 사랑에 빠진 여학생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그 이야기가 가후쿠에게는 뭔가 좌절할 만한 것이 됐던 것 같다. 이튿날이면 오토가 했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던 그가 잊어버렸다고 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남편의 잊어버렸다는 그 말로 인해 오토는 무언가를 깨닫고 그와 대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돌아오면 이야기를 하자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토가 생각지도 못하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가후쿠는 아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내를 갑작스레 잃고 모든 의문까지 끌어안아야 했던 가후쿠는 딸을 잃은 슬픔으로 면역이 되어버린 건지, 아니면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사건으로 인해 그녀를 향한 감정이 무뎌진 건지 그다지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연출한 연극의 무대에 올라 대사가 마치 자신의 상황에 부합한다고 느끼며 괴로워하던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부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한편으로는 가후쿠의 연극을 종종 보여줬다. 그는 주로 체호프의 소설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는 듯했는데, 그의 연극이 독특했던 점은 다양한 언어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일본인과 영어권, 그리고 비영어권 외국인들이 무대에서 각자의 모국어로 대사를 주고받았고, 무대 정면에는 스크린을 띄워 관객이 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언어의 자막을 흘려보냈다. 굉장히 특이한 연출이라 신선한 느낌을 받았는데, 영화가 후반으로 가면서 그 연출 또한 깊은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토의 죽음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참여하게 된 가후쿠는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 오랜 침묵 속에서 동행을 하게 됐고, 일본인과 중국계 외국인, 수어를 사용하는 한국인, 비영어권 외국인 등의 배우들과 일을 하게 된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다양한 배우들을 기용한 가후쿠의 연극과 해야 할 말만 하는 미사키를 보며 자연스레 오토와의 관계를 되새겨보게 됐다.
가후쿠의 연극은 정해진 대사가 있어서 배우의 언어가 서로 다르더라도 뜻을 알고 있었고, 상대의 정해진 대사와 감정으로 상황을 해석하기 때문에 의미가 통했다. 연극의 흐름만 알고 있다면 되는 일이라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어와 중국어로 대사를 하고, 수어와 일본어로 대사를 해도 그 뜻을 충분히 알았다. 그리고 드라이버 미사키는 초반엔 해야 할 말 외에 다른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후쿠를 편하게 해줬다. 차에서 아내가 녹음해 준 대사 테이프를 늘 들으며 자신의 대사를 연습하는 특이한 버릇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차를 좋아하고 아껴서 운전대를 잘 안 넘기는 가후쿠가 미사키를 만나기 이전에 운전하는 오토에게 핀잔을 줬을 때와는 다르게 그녀에게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던 걸 보면 미사키에게 운전은 침묵이라는 언어와 감정이 담긴 소통과 같은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이런 낯선 사람들과의 소통이 잘 되던 것과는 다르게 부부인 오토와 가후쿠는 대화는 물론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서로 달라 통하지 않았다. 오토는 원래 배우였으나 딸이 죽은 뒤 내면으로 침잠했다가 문득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쓴 이야기가 수상으로까지 이어졌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오토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표현해 주는 배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되었다고 느꼈다.
딸의 죽음 이후에 일어난 오토의 그런 변화는 슬픔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감정 표현이 남편 가후쿠와는 달라서 일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서도 일단 피하는 선택을 했고, 그것에 관한 언질이나 눈치챌 수 있을 만한 감정 따위를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그 행동을 딸의 죽음과 연결 짓는 건 비약일 수 있겠지만, 가후쿠의 감정은 죽음과 배신이라는 큰 충격에는 무뎠던 반면 무대에 올랐을 때는 확연하게 드러났던 걸 보면 일상에서의 그의 감정은 어딘가 망가져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로 인해 오토는 가후쿠의 감정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혹은 그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고 느껴졌다. 연극이든 방송이든 이야기에 관한한 가후쿠는 숨지 않고 감정을 온전히 드러냈으니 말이다.
가후쿠, 오토 부부와 대척점에 있던 사람은 연극제 관계자인 윤수와 수어를 하는 한국인 유나 부부였다고 느껴졌다. 연극 연습이 시작되면서 윤수가 가후쿠를 집으로 초대하게 됐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유나와의 관계가 밝혀졌다. 윤수의 이름은 한국식이긴 했으나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듯했고, 이후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를 배웠으며 부산에서 유나를 만나 한눈에 반한 이후에는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식 수어를 배웠다고 했다. 덕분에 윤수는 사랑하는 아내와 대화가 잘 통했고, 아내에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일본에 와서도 부부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윤수가 다른 사람의 몫까지 모두 들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같은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오토, 가후쿠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결국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정을 끄집어내기 위해 한쪽만 노력했던 관계는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토가 다른 남자들과 섹스를 했던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주지 못한 감정을 자신을 동경하는 다른 이에게서 충족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오토의 드라마에 출연했고, 가후쿠의 연극에도 참여하게 된 다카츠키가 내내 의심을 샀던 게 어렴풋이 밝혀지며 오토가 죽기 직전까지 이야기했던 사랑에 빠진 여학생 이야기의 진짜 결말을 들려주게 된다. 가후쿠가 듣지 못했던 그 결말은 오토가 남편에게 남기는 흔적과도 같았던 것으로 느껴졌다. 여학생은 그녀 자신이고 사랑하는 남학생인 남편에게 무언가를 남겨뒀지만 그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이후 여학생이 죽이게 됐던 건 빈집털이범이었지만 그는 그녀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었나 싶다.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그 결과로 오토가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느껴졌다.
중간에 밝혀진 가후쿠와 오토의 이름 뜻 역시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 보였다. 가후쿠의 한자는 집 가(家), 복 복(福)을 쓴다고 했고, 오토는 소리 음(音)이라는 한자를 썼다. 결혼 후 아내는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일본이라 오토의 이름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변하게 되는데, 두 사람의 가정은 이름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말았던 걸 보면 너무나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카츠키를 통해 오토와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과정 사이에 드라이버인 미사키와의 관계는 서서히 누그러졌다. 같은 차에 차서 한 명은 운전석에, 다른 이는 탈 때마다 의자를 제쳐야 하는 불편한 뒷좌석에 앉았었지만, 차라는 것을 매개로 말하지 않는 감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미사키가 어렸을 적 엄마와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가후쿠와 오토 부부처럼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긴 했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싫은 부분이 있었던 걸 보면 미사키와 가후쿠는 서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존재였다. 우연찮게도 가후쿠와 오토 부부의 딸이 살아있었더라면 미사키와 같은 나이였을 거라는 사실도 우연으로 인한 필연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과거와 슬픔, 비극을 거울처럼 되돌아보며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며 자기 자신 역시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후쿠는 오르지 않을 거라고 했던 무대에서 유나의 수어를 통해 이런 삶일지라도 다시금 살아갈 희망을 깨달았고, 그 연극을 본 미사키 역시 같은 것을 느꼈을 터였다. 결말에 미사키가 한국에서 살며 가후쿠의 빨간색 사브를 몰고, 유나처럼 개를 키우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의 융합이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해서 관심이 생겼었다. 하루키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게는 작가의 장편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원작이 수록된 <여자 없는 남자들>은 안타깝게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하루키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작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키 본인도 영화에 대해 찬사를 했을 정도라니 정말 잘 만든 영화임이 분명했다.
다만 영화를 보기 전까지 고민하게 만든 것은 179분이라는, 3시간에서 겨우 1분 빠진 러닝타임이었다. 러닝타임이 길면 길수록 집중력이 흐려질 테고, 더군다나 드라마 장르의 영화라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3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그건 완벽한 우려였다는 걸 알게 됐다. 촘촘하게 쌓아가는 내러티브가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결을 따라가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영화 평을 보니 지루했다는 관객도 있는 듯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단 한시도 지루하지 않았을 정도로 영화에 푹 빠졌고 정말 좋았다. 전날 아쉽게 감상했던 영화 두 편을 이 영화로 상쇄하게 만들었을 만큼 좋았다.
알고 보니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올해 인상적으로 본 <스파이의 아내>의 각본을 썼다고 한다. 감독의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하루키의 소설 역시 꼭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