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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분자

[영화] 공포분자

개봉일 : 2020년 09월

에드워드 양

대만 / 드라마 / 15세이상관람가

1986제작 / 20200917 개봉

출연 : 무건인,이립군

내용 평점 4점





 

어느 새벽, 골목에 총성이 울리고 한 남자가 총에 맞아 길에 쓰러졌다. 여자친구와 함께 살던 소년은 총소리를 듣고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소년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때로는 새벽의 총기 사건으로 모여든 경찰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다 사건이 일어난 곳 근처에서 한 남자와 소녀가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걸 목격한다. 경찰은 이내 남자를 잡아갔지만, 소녀는 쫓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다리를 절뚝이며 어디론가 향하는 그 소녀를 쫓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소설가 주울분은 마감이 임박했는데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워한다. 의사 남편인 이립중은 아내를 다독였지만, 영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아내와는 다르게 남편은 회사에서 승진을 앞두고 있어서 기쁜 마음이 들지만 마냥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상이 이어지던 중, 주울분은 서재를 정리하다가 전화를 한 통 받게 된다. 웬 여자가 남편을 찾으며 그와 아내인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전화 이후 주울분과 이립중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져버렸다.







 

총기 사건만 아니었으면 너무나 단조로운 삶이었다. 입대를 앞두고 집에서 도망을 쳐 여자친구의 집에 살던 소년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뇌하는 소설가도, 승진을 앞둔 의사도 별다를 거 하나 없는 일상이었다. 그러나 총기 사건이 일어났고,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는 소년이 호기심을 보이며 사건을 쫓다가 소녀의 사진을 찍게 되면서 완전한 타인이었던 그들의 인연이 겹치게 됐다.

소년이 소녀의 사진을 찍다가 다리를 다쳐 쓰러진 그녀를 구해줬던 것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다른 사람 몰래 사진을 찍는 건 요즘엔 범죄라 부를 수 있는 것이긴 했으나 소년의 행동엔 악의는 없었고, 그저 사진을 좋아하고 잘 찍고 싶어서 연습을 하느라 그런 것뿐이었다.
다만 소년이 소녀의 사진을 인화해 방에 걸어두면서부터 어쩌다 닿게 된 인연의 비극이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소년의 여자친구는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의 사진을 찍은 것으로도 모자라 집요하게 찍은 그 사진을 방에 걸어둔 것을 보자 화가 나고 말았다. 아마 여자친구는 소년이 사진을 찍어 걸어두는 행위를 사랑이 담긴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소년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겠지만, 여자친구는 정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 테이블 위에 약이 한가득 놓여있었기에 불안함이 커져서 화를 냈던 것으로 보였다.
소년은 여자친구가 화를 내는 걸 참을 수 없었던지 자신의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렸는데, 소년이 새로 얻은 집은 사진 속에 담긴 소녀가 뛰어내렸었던, 아마도 총기 사건이 일어났을 바로 그 집이었다. 그리고 집에 남겨진 여자친구는 소년이 떠난 것에 상심해 약을 잔뜩 먹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그런데 그 장면의 배경에 깔린 내레이션은 여자친구의 심경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말을 하는 사람은 전화기를 든 사진 속 소녀였다.

소년과 소녀, 여자친구의 사건과는 별개로 소설가 주울분과 의사 이립중 부부의 일상은 평온하고 단조롭기만 했다. 그들에게 직업적으로 여러 일이 일어나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 그들의 일상은 주울분이 사진 속 소녀의 장난전화를 받게 되면서 무너지게 됐다.
물론 그 이전부터 그들 부부의 관계가 불안해질 거라는 조짐은 있었다. 주울분은 이전에 만나던 심 씨와 재회하게 되는데, 회사를 차린 그에게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립중도 아내의 지인인 심 씨를 알고 있었으나 두 사람이 연인 사이였다는 것은 몰랐다. 소설을 쓰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커진 주울분은 심 씨에게 심경을 털어놓게 됐고, 그 이후 두 사람은 잠자리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 관계가 더 이상 발전되지는 않을 거라고 보였는데, 소녀의 장난전화로 인해 주울분은 남편을 의심해 떠나기에 이른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가만 보면 그들은 늘 외로웠던 것 같다. 사랑해서 결혼했을 주울분과 이립중은 서로의 괴로움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마음까지 끌어안아줄 수는 없었다. 소설가로 글이 잘 안 써져서 괴로워하는 주울분에게 이립중은 다시 쓸 수 있을 거라는 형식적인 말을 했을 뿐이었고, 이립중은 세상을 떠난 동료와 관련된 어떤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 입지를 위태롭게 했지만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사진을 찍는 소년과 여자친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밤새 책을 읽느라 불을 켜놓았던 여자친구는 잠을 설치는 소년을 배려하지 않았고, 소녀의 사진을 찍은 뒤 걸어놓은 행위에 대해 화를 내는 여자친구를 소년은 이해하지 못하며 떠나버리는 선택을 했다.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하는 선택을 했던 그들의 외로움에 발화를 일으킨 건 소녀의 사진과 장난전화 때문이기는 했지만, 소녀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처럼 보였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들이 딛고 있는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게 된 건 주울분이 그토록 막막해하던 소설을 완성하고, 심지어는 1등을 수상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이 일이 있기 이전에 재회한 심 씨는 주울분이 쓴 단편소설이 자신들의 이야기라 느껴졌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번 소설은 그녀와 남편에 관한 이야기에 살을 덧붙였다. 장난전화 사건으로 영문도 모르는 남편을 떠났고, 남편은 화가 나 아내를 찾아와 죽이고 자신의 목숨마저 끊어버렸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소설가가 현실에만 기대어 글을 쓸 수는 없을 테지만, 주울분에게 영감이 되는 건 오로지 현실뿐인 것 같았다.
실제로 일어났던 현실에 허구를 덧붙이게 됐으나 우연찮게도 그건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그들이 사는 세계의 현실과 허구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주울분과 이립중 부부의 일이 있기 이전에 소녀가 전화기에 대고 한 말이 소년의 여자친구에게 일어났던 걸 보면 소녀로 인해 그 경계가 허물어진 것으로 보였다.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 소녀의 존재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지만, 이후 영화는 소설가와 의사 부부의 모습을 주로 보여주며 외로움에 지배된 이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줬다.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놀라움을 준 건 그들의 현실이 허구와 겹쳐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도입부가 후반에 다른 시선으로 진행되며 수미상관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건지 알 수 없게 만드는 후반이었기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의미 없는 나열이라 느껴졌던 초반의 장면이 후반이 되어서야 완성된 것 같기도 했다.
모든 상황이 주울분이 쓴 소설처럼 흘러가고 있었지만, 마지막이 되었을 때 결국 현실과 허구가 분리가 됐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아내를 향한 이립중의 깊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그러면서도 깊이 사랑했던 아내에게 할 수 있는 복수는 그것뿐이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하나 그리고 둘>이 유명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작품 중 하나를 보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두 영화 모두 러닝타임이 너무나 길었다. 특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거의 4시간에 이르는 작품이라 보려면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나마 러닝타임이 짧은 이 영화를 보게 됐다. 그런데 처음엔 제목만 보고 단순하게 공포 영화라 생각했는데, 심리를 묘사한 드라마였다. 공포에 관련된 건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제목의 의미가 이해되는 듯했다.

일상을 무너뜨리는 건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누군가의 장난이 이런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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