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이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세종과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민족의 성웅임에는 틀림없기에 유년 시절부터 그를 추앙하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그런데 무패의 제독(提督)인 그도 때론 점치는 일이 왕왕 있었다는 것, 난중일기에 ‘움츠리다’의 의미를 가진 한자가 수회 나온다는 얘길 듣고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난중일기’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에는 좀 불편하더라도 가장 원문에 근접한 ‘난중일기(이순신 글, 고정일 역, 동서문화사 펴냄)’를 찾았다.
난중일기를 읽다보니 새삼 그의 성실함에 놀라게 된다. 옥고를 치르거나 전쟁 중인 상황을 제외하고 그 날의 날씨와 본인이 처리한 업무, 만난 사람들, 본인의 감정 등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앓아 누워있는 경우 외에는 항시 출근하여 공무를 보고 본인도 화살 쏘는 훈련을 꾸준히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매일 의견을 나눈다. 그의 물샐 틈 없는 자기 관리와 군기 관리를 엿보니, 그가 이끈 조선 수군의 승리가 기적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전국민이 알고 있는 이순신의 효심은 물론, 본인 가족의 안녕에 대한 걱정, 왜군이 휩쓸고 간 지역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에 대한 배려, 국토를 지키고자 하는 절절한 나라사랑을 표현한 글들을 읽으면서, 평범한 한 남자의 고뇌와 갈등에 나까지 울컥한다. 리더로서 혼자 감내해야 했을 결단의 순간들, 밤잠 설치며 고민했던 긴 밤들, 한번 앓아누우면 며칠을 누워 신음했을 시간들을 지금까지 알아주지 못 한 것이 죄송스럽기까지 하다.
1594년 9월 3일
비가 조금 내렸다. 새벽에 ‘수군과 육군의 여러 장수들이 팔짱만 끼고 서로 바라보기만 하면서 한 가지라도 계책을 세워 적을 치는 일이 없다’는 임금의 밀지가 들어왔다. 세 해 동안이나 바다에 나와 있는데 그럴 리는 만무하다. 여러 장수들과 맹세하여 죽음으로써 원수를 갚을 뜻을 결심하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적이 험하고 수비가 견고한 곳에 굳게 막아 지키고 있으니 경솔히 나아가 칠 수 없는 것 뿐이다. 하물며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본문 p.155)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을 기리는 기간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기리며 그들이 지킨 나라에서 내 역할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