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란다. 마스크를 깜박했다. '앗, 다시다시! 열림, 열림 버튼!’ 버스에서 용케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전광석화처럼 가서 앉았는데 바로 옆에서 기침 소리가 난다. 나의 공포심을 불러온 그 사람을 원망하며 얼른 자리를 피한다. 외출하면 이제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맨얼굴을 찾아보기 힘들다. 연초 설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위생, 소독, 감염이라는 단어에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다.
그래서 ‘수술의 탄생(린지 피츠해리스 글,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펴냄)’의 표지 삽화는 더욱 당황스럽다. 의사가 환자의 대퇴부에 칼을 넣어 수술 중인데, 많은 이들이 수술대 주변에 빙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아마 역사상 가장 예민할 현대인의 위생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이 광경이 불과 150여년 전의 일이라니, 신기하기만 한 옛날 사람들 모습이다.
1869년까지도 외과의 제임스 Y.심프슨이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보다 워털루 전투에 참가한 병사가 생존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본문 p.62)
상처 자체에 있는 무언가가 문제인 것이 분명했다. 환자 주위의 공기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감염된 상처에서 긁어낸 고름을 세심하게 현미경 슬라이드에 바른 뒤 현미경으로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 보인 것들이 그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이윽고 자신의 뛰어난 스승인 존 에릭 에릭슨 같은 인물조차도 고수했던 신념 체계 전체에 의문을 품는 계기가 되었다. (본문 p.111~112)
<거의 모든 상처가 곪아서 악취를 풍기던 그 시대에는 붕대와 더듬자 작업을 다 끝낸 뒤에야 손과 기구를 깨끗이 닦는 것을 당연시했다.> 모든 것에 한 꺼풀 때가 묻어 있었다. (본문 p.177)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많은 외과의는 지난 15~20년 동안 자신들이 상처를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에 감염되도록 함으로써 뜻하지 않게 환자들을 죽이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본문 p.231)
이 책은 수술 후 감염이 부패하는 균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생을 매달린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인물의 생을 단순히 연대순으로 나열한 전기라기보다는 역사서에 가깝다. 책은 당시 영국에서의 수술이 어떤 식으로 행해졌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시작하여, 리스터가 의대생으로 첫 발을 디딘 순간부터 연구자로서 의사로서 일궈낸 업적이 정치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세계로 뻗어나갔는지를 긴장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리스터 본인이 가족들과 주고받은 서간들과 의학 전문지 ‘랜싯’에서 거론된 이야기들, 리스터에 대해 쓰인 방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렇게 논리적이면서도 재미나게 엮어낸 작가를 위해 진심을 다해 박수를 치고 싶다. 선구자다 보니 주변으로부터 끊임없는 도전과 의심을 받아 당시엔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겠지만 결국엔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멋지게 증명해 보인, ‘진짜 의사’ 리스터의 업(業) 대한 열정에도 경의를 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