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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보면서 아이들이 생활하고 커가는 가정환경의 중요성과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자기 자신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사춘기 아이들이나 사춘기를 맞이할 아이들이 읽으면 무척 좋을 것 같다.

 

 책의 표지에서 보이는 소녀의 이름은 찰리고, 개의 이름은 위시본이다. 찰리와 위시본의 만남은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린 것 같다. 찰리를 알기 전 위시본은 동네에서 그냥 떠돌이 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개를 보자마자 찰리는 꼭 자신의 개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이 위시본과 친구가 되기까지는 찰리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우선 친구인 하워드가 적극적으로 도와줬고, 이모 버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찰리는 누군가의 도움에 익숙하지 않던 소녀였다.

 

 찰리가 자신의 부모가 아닌 이모 버서네 집에서 살게 된 이유는, 쌈닭이라 불리는 아빠는 교도소를 가게 되었고, 엄마는 우울증에 걸려 자식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찰리는 이모네로 보내지게 된 것이다. 이모 부부에겐 아이가 없어서 이모가 찰리를 간절히 원했던 이유도 있다.

 

 이렇게 해서 찰리는 이모네서 지내게 된다. 처음에는 이모네 집이 싫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학교를 가서도 자신은 곧 이곳을 떠날거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흥미 없었다. 물론 친구들도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전학온 찰리를 위해 친구 하워드를 붙여준다. 그런데 이 하워드는 다리를 약간 절뚝거린다. 또한 하워드는 찰리가 뭐라고 하던 화를 내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며 이것저것 자세히 알려주고, 항상 옆을 지켜준다.

 

 처음엔 이런 하워드가 찰리는 귀찮고 싫었다. 그러나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하워드로 인해 차츰 찰리는 변하게 되고 그런 자신에게 놀라기까지 한다. 하워드 집안 사람 모두는 하워드처럼 착하고 사람들이 좋다. 찰리는 하워드 집을 보며 자신도 이런 가정에서 살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찰리는 매일 소원을 비는 습관이 있다. 그 소원이 무엇인지는 찰리만이 안다. 소원을 얘기하는 순간 그 소원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찰리는 11시 11분이란 시간을 보며 소원을 빈다든가, 어떤 상황에는 이런 행동을 한 뒤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등 하루도 빠짐없이 소원을 빈다.

 

 그러던 어느 날, 찰리는 하워드와 같이 있을 때 소원을 빌어야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래서 하워드도 같이 소원을 빌게 되고, 그 소원을 서로 얘기하지 않는다. 찰리는 하워드가 분명히 다리를 절지 않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을거라 생각한다.

 

 하루 하루 이모네서 생활하면서 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곳을 좋아하게 된다. 교회에서 여름 성경학교가 있어 도시락을 싸서 이 곳에 찰리도 참석한다. 그런데 이 곳에서 한 친구가 흘린 쪽지를 찰리가 줏어서 보게 되는데, 그 쪽지에는 엄마가 그 아이에게 다정하게 잘 놀다오고, 재밌게 있다 오라며 많이 사랑한다고 적혀 있었다.

 

 순간 찰리는 그 쪽지의 주인이 자신이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이만큼 찰리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컸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모나 이런 찰리를 친딸 이상으로 돌봐준다.

 

 그러던 어느 날, 찰리의 엄마가 상태가 호전되어 찰리가 집으로 돌아갈수도 있는 상황이 오게 되고, 이때서야 찰리는 자신이 이 곳을 얼마만큼 좋아하고 친구 하워드 옆에 있고 싶은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하워드에게 얘기했더니 하워드가 그럼 우리는 친구냐고 묻자, 찰리는 당연한걸 왜 묻냐는 식이다. 하워드는 이전에 소원을 두 가지 빌었는데, 그 중 하나가 찰리와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며, 소원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워드가 찰리보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테니 걱정말라고 말해준다. 꼭 그렇게 될거라며 말이다. 집으로 돌아간 찰리는 이모와 엄마가 통화하는 것을 보게 된다. 통화중에 이모가 저렇게 화내는 모습도 처음 보게 된다.

 

 통화가 끝나고 이모는 찰리보고 걱정말라며 엄마의 상태가 아직 좋지 않아 다시 잘 알아보라 했다며, 계속 여기서 살면 된다고 하자 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모를 안으며 자신도 쭉 여기서 이모와 이모부와 하워드랑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찰리에게는 이제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이다. 역시 부모라고 해서 모두가 자식에게 잘해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부모가 아니어도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는게 중요한 것 같다. 또한 사랑 가운데서 성장한 아이가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내 아이는 지금 어떤지 돌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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