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래 꽂혀있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두 권이나 된다. 출판사가 다르고 샀던 시점이 다르지만 둘 다 펼쳐서 몇 장을 넘기지 못했다. 원문도 아닌 번역본이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장황하게 전개되어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글의 흐름을 잡기가 어려워 이내 읽기를 포기하곤 했다. 그러다 책장 정리를 위해 10년도 훌쩍 넘긴 어느 해에 읽었던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소크라스테스 변명>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제야 감이 왔다.
"내가 플라톤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대학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한 선배는 대학 4년 동안 책 두 권만 읽으라는 것이었다. 한 권은 공자의 <논어>요, 다른 한 권이 플라톤의 <국가>였다. ... 물론 선배는 나에게 만만치 않은 조건을 주문했다. 국문이 아닌 원문으로 읽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용보다도 더 인상적인 것은 철학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철학을 경험한 작가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서문이었다. 4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가치라는 의견때문에 지금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논어>와 <국가>. 마감 임박의 문구보다 강렬한 끌림을 받았다. 논어는 과거 몇 번 시도하다 실패했는데..
"내가 본격적으로 공자를 만난 것은 1990년, 서른세 살의 일이었다. 이때 <논어>를 완독하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렸다. ... 자연과학은 20대에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은 인생의 깊이만큼만 이해된다."
단 한 번도 수개월을 투자한 적은 없었으니 논어 독파에 실패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일. 과거 시도했던 시점보다 조금 더 세상을 알게 된 지금 조금은 더 이해하기가 수월해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용기가 생긴다.
"인간의 가치는 그의 사상과 행동이 공동체의 선을 위하여 얼마나 기여하는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작가가 서문 마지막에 남긴 글이 철학을 꼭 읽어야한다는 어떤 조언보다도 강렬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본문에 소개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신의 철학 논조를 고집하느라 때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비 현실적인 길로 들어서니, 단 하나의 철학이 세상을 이롭게 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여러 철학자들처럼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결국 세상에 이롭게 만들 수 있을지 않을까? 철학과 친해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