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출신 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1975년부터 16년간에 걸처 티베트 고원의 라다크에 머물며 경험한 현지체험을 기초로한 현장보고서 <오래된 미래>를 읽었다. 이 책은 1996년 초판이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된 후, 여전히 살아남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듯 한데, 내가 읽은 책은 2007년 개정증보판으로 녹색평론사에서 발간된 것이었다. 오래되어서 누렇게 색이 바랜 책을 그냥 버릴까 고민하며 빠르게 펼쳐보던 중,
나는 라다크에서 낭비도 오염도 없는 사회, 범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공동체는 건강하고 튼튼하며, 십대 소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유순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사회를 알게 되었다.
사춘기 소년이 다정하게 살아간다는 대목에서 눈이 멈췄다. 유순한 사춘기 소년이라니, 어떻게 가능하지? 호기심이 생겼다.
적정 경작면적은 가족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데, 집안의 노동인구 1인당 약 1에이커이다. 그 이상은 땅이 별 소용이 없다. 경작할 수 없는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이것은 라다크인들이 땅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땅을 잰다는 사실에 반영되어 있다. 경지의 크기를 '하루', 이틀' 하는 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책을 더 읽어나가며 그들의 삶의 태도, 물질을 대하는 모습에서, 비단 사춘기소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유순해 질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는 삶의 태도. 덕분에 더 소유하려는 욕망도 없고 경쟁도 없는 문화. 그들의 유순함은 거기서 오는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경쟁으로 내몰고 그 힘듬을 부추기는 부모가 된다면 결코 다정한 사춘기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늙은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활동을 한다. 어느날 아침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여든두살 된 할아버지가 지붕에서 사다리로 달려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활기에 차 있었고, 우리는 날씨에 대해서 한두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오후 세시에 그는 죽었다. 그는 잠든 것처럼 평화롭게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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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는 느슨하고 편안하다. 사람들은 맑은 공기를 마시고 규칙적으로 장시간 운동을 하고 정제되지 않은 완전식품을 먹는다. 그들의 신체는, 그들 자신이 그 일부인 자연세계에 대하여 이질적인 물질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되지 않는다.
티베트 고원의 라다크 사람들의 50년 전은 영아 사망률도 높고, 평균 수명도 더 짧았다. 의학이 받아들여지기 전의 삶이었으니 당연할 수 있는 결과였으나, 그럼에도 건강하게 늙어가고 멋지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존재했다. 그런데, 그런 삶은 모두가 라다크 사람처럼 현대 문명을 버려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시간 운동, 건강하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삶을 사는 것이 현대의학에 의존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것은 자주 잊혀지지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니 말이다.
의도하지 않게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선한 영향을 받았다. 앞으로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건강하게, 단순하고 소박하게 정신이 풍요롭게, 모질게 대해 관계를 망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