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모으는 사람을 수집가 라고 해.
예전에 온라인 서점이 없었을 때 나는 각 서점의 책갈피를 모으는 데 열중했었다. 낯선 서점에 가서 하나씩 얻는 비닐책갈피를 보며 뿌듯해하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땐 그런 재미가 있었다.
최근엔 각 출판사 마다 펴내고 있는 세계문학도서를 하나씩 사모으고 있는데 이것도 제법 양이 많아지면서 멈춘 상태다. 주변에 물건이 많아지는 것도 부담이라서 될 수있으면 뭐든지 줄이고 싶다. 이런 마음은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거고, 어린 시절엔 뭐라도 자신의 것을 모으고 싶어하는 마음이 클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방에 가보면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아이는 자전거를 무척 좋아한다. 자연히 자전거와 관련된 물건은 무엇이든 관심을 갖고 용돈을 아껴 사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 머리 속에는 늘 자전거가 1순위여서 엄마와 마트에 가면 얼른 광택제 파는 곳으로 달려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게 바치는 정성은 다르지 않다는 걸 그 아이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제롬도 수집가다. 특이하게도 그 대상이 낱말이었다. 온통 낱말에 관심이 가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고 길에 있는 간판도 함부로 보는 법이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낱말을 모으다보니 어느 새 특성에 따라 낱말을 분류할 줄도 알게 되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말, 소중한 단어, 노래 같은 단어, 생각하면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단어들 등등.이렇게 분류한 낱말을 책으로 만들어 쌓아가다가 어느 날 실수로 그 낱말들이 마구 엉키는 사고가 일어난다.
뒤죽박죽된 단어들은 제롬이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모양새로 줄을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낱말들은 이상하게도 멋진 노랫말이 되어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웬지 낯설지만 자꾸 마음을 끄는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가지런한 배열을 이탈했을 때 더 많은 생각과 느낌과 꿈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많은 노래와 시들이 그렇지 않은가. 고정관념을 깬 문장들은 하늘 높이 날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꿈을 선물해주었다.
평생 모은 것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공공의 자산으로 만들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간송 전형필을 들 수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고생해서 모은 예술품들을 보며 옛날과 현재, 미래가 긴밀히 연결되어있다는 경외심을 느낀다. 제롬의 이야기를 읽으며 시인이 어떻게 탄생하는가와 왜 시가 있어야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지만 그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다. 이 책을 읽는 유아들은 그 나름대로 재미있게 제롬을 보며 박수 치겠지만 어른은 어른대로 자신이 소중하게 모은 수집품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보게 한 심오한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