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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도서] 페스트

알베르 카뮈 저/김화영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프랑스 식민지 시대인 194×, 아프리카 알제리의 대도시 오랑에는 피를 토하고 죽은 쥐들이 골목을 메우더니 전염병이 돌기 시작됐다. 폐쇄된 도시에서 페스트와 싸우며 지내던 오랑 시민들의 10개월을 그린 1947년 작 이 소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펜데믹을 선언한 현재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을 먼저 소개해본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갖가지 재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불행을 예측하면서 끝난 이 소설의 또 다른 시작이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시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에서 페스트가 빠르게 번지자 사람들은 공포와 함께 반성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있다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 내 모습을 성찰해보고자 한다.

 

의사 리유는 사람들에게 페스트를 진단하는 일을 맡고 있다. 페스트가 돌기 전에는 존경받는 의사였지만 진단의가 되자 사람들은 저승사자를 보는 것처럼 그를 두려워한다. 리유는 원칙주의자로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냉정하게 사태를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 병의 한가운데를 헤쳐 나가는 중이다.

 

신문기자인 랑베르, 우연히 오랑에 머물고 있는 타루, 시청 서기로 모범적 삶을 살고 있는 그랑, 자살미수자 코타르 등이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페스트가 신의 징벌이므로 사람은 신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파늘루 신부는 병명 미상으로 죽고, 의사 리유처럼 오랑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꼼꼼하게 기록하던 타루도 페스트의 희생자가 된다. 패스트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고, 오랑 시에는 시신을 묻는 대신 화장할 수밖에 없을 만큼 희생자가 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포 속에서도 시민들은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랑은 퇴근 후 두 시간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글을 쓰고 고치는 시간으로 삼고 있었다그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그는 그 시간을 기꺼이 보건대 자원봉사로 썼다. 취재차 들어온 외부인이기 때문에 폐쇄된 도시에 갇히는 것은 부당하다고 외쳤던 랑베르는 막상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남아있기로 결정한다.

 

서술자는 오랑 시가 폐쇄에서 풀려났을 때,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 영웅을 굳이 말하라고 하면 의료진이나 당국의 높은 인물들이 아니라 시민들이라고 말한다. 시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폐쇄된 도시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하고 귀양살이와 같은 격리기간을 겪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직분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에도 가짜뉴스가 나오고 터무니없는 루머에 비이성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 모습이 나온다. 격리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을 좁혀오는 죽음과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페스트균이 살지 못하게 알콜을 마시기도 한다. 제각각 불만이 있어 서로의 마음을 할퀴기도 하지만 결국 페스트를 몰아낸 것은 타인을 배려하는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이었다.

 

아침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뉴스를 먼저 찾아보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뉴스의 댓글에는 응원과 격려보다는 질타, 불만들이 더 많아 보인다. 각자 표현의 방식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비이성적 댓글을 보면 타루가 마지막 순간에 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는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정도를 걸어가기 위해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현재의 펜데믹 상황을 이겨내는 모범답안임을 알려주는 이 책을 읽고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아래의 한 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서라도 전진을 계속해야만 하고 선을 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웅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웅은 이름 남기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을 흠모하는 이들의 기록에 의해 남겨질 뿐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는 영웅이 너무 많으므로 일일이 그 이름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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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저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는데 지금 현실과 다르지가 않네요 요즘 인기가 있는 이유가 있군요, 인간은 위험할 때 본성이 나온다고 하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 몰려 이성을 잃고 있는 모습들이 참 안타까워요 그나마 우리나라 시민들이 훌륭하다고 믿고 싶습니다.

    2020.03.24 18:2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파란자전거

      '시의적절한' 독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기를 대하는 자세로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거겠죠. 저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 급한 성격에 탈출하다 죽었을까? 봉사자로 나섰을까? 많은 사람들처럼 숨죽이며 집안에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ㅜㅜ

      2020.03.27 10:43
  • 페스트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하셨던 것처럼, 리뷰의 마지막 문단에 공감의 추천을 누르고 갑니다. 저도 리유를 보면서 대구를 봅니다.

    2020.03.24 23:4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파란자전거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지금 우리의 모습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숨죽이고 있다가 공을 가로채고 싶은 박쥐 같은 마음이 숨을 곳이 없네요...

      2020.03.2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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