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를 읽다가 조금 지겨워져서 중간에 접어놓고 읽게 된 책이다. 앞의 책이 문학에 대한 길고 깊숙한 평론이라면 이 책은 짧고 가벼운 비평이라 할 수 있다. ‘느낌의 공동체’라는 매혹적인 제목이 실은 우리에게 문학과 함께 살아가자는 저자의 간곡한 바람이라는 걸 책을 덮고서야 알았다.
문학, 그 중에서 시에 대해 저자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고 있다. 그러나 그 복층의 의미를 다 들여다볼 수 없기에 시는 어렵고 현실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잔치가 되기 십상이다. 비평은 이런 시인과 독자의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가 굳이 산문집이라고 이름 지은 이 책이 바로 이런 간격을 조금이라도 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비평이라기보다는 리뷰에 더 가까운 내용도 많았다. 2부의 시집들 소개와 4부의 소설이 특히 그랬다. 평론가이기 때문에 보통사람보다 작품을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익숙하고 보는 눈이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몇 권의 시집과 또 몇 권의 소설의 제목을 적어놓는다. 나는 허수경과 이문재의 시집을 구입할 것이고 이미 절판되어 아쉬워만 했던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김소연의 “마음 사전”과 코맥 맥카시의 “로드” 또한 나의 장바구니에 담길 것이다.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평론집을 애써 찾아 읽으려고 해도 평론가의 수준이라는 게 워낙 높아서인지는 몰라도 즐겁게 읽을 평론집을 잘 알지 못한다. 샀다가 그냥 책꽂이에 자리만 내주기 일쑤다. 이 책은 그런 평론집이 아니라서 좋다. 재판이 나오기가 어려운 문학비평 책 중에서 드물게 이 책은 내가 구입한 시점이 벌써 5쇄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을 문학일 수 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이 이런 비평이고 평론이다. 그에게 이름 불린 많은 작가들은 다음 작품을 쓸 힘을 얻을 것이다. 그가 제목에 명시한대로 이 책이 같은 느낌을 가진 공동체를 지향한 것이라면, 그 공동체가 문학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면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대해 일층 두터워진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평론가는 텍스트를 통해 세상을 보고 독자들은 평론가의 글을 통해 텍스트를 본다. 근시들은 맨눈으로 보는 세상과 안경 쓰고 보는 세상이 같을 수 없는데 문학에 대해 워낙에 근시인 나 같은 사람들에겐 이런 비평문이 안경의 역할을 해준다. 언제쯤 나도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텍스트를 만날 수 있을지 요원한 일이기에 이런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책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내용이 이 책처럼 가볍게 다가올 때는 더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