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서울 망원동 옥탑방을 보증금 5백에 30만원 월세를 내고 사는 노총각 영준의 이야기다. 영준은 만화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책을 내지만 기대한 만큼 책이 팔리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생활하는 반백수다. 서른이 훌쩍 넘어버렸지만 아내도 직업도 없이 겨우 겨우 살아간다. 이런 영준에게도 빌붙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두 명씩이나. 만화출판사에서 영업을 담당했던 김 부장은 캐나다에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홀로 귀국한다. 전 재산을 캐나다에 두고 왔기에 영준의 집이 아니면 노숙을 해야 할 형편이다. 만화 스토리 작가로 한때 이름을 떨친 싸부 역시 만화계의 침체로 일을 찾지 못하고 아내 눈치만 보며 살다가 이혼할 위기가 찾아오자 영준의 집으로 찾아온다. 거기다 고시원에서 공부를 한다는 삼척동자는 하루가 멀다하고 영준의 옥탑방을 찾아와서 놀다가는 게 일이다 이 네 남자의 이야기다. 사회에서 패배자로 일컬어지는 네 남자의 구질구질한 삶. 그 속에서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따뜻함. 혼자라면 견디기 힘든 시간이라도 함께이기에 네 남자는 풍랑을 헤치며 나아간다. 얼마 전에 읽었던 난파당한 선원들이 굶주림을 참지 못해 견습선원을 죽인다는 잭 런던의 단편 소설-프란시스 스페이스 호-에서 보여준 삶의 잔혹함과는 반대의 삶의 따뜻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약간 김이 빠지기도 했다. 우리 삶이 소설처럼 약간의 어려움 뒤에는 반드시 찾아오게 되는 따뜻함이 보장되는 법이 없다는 걸 알기에 느낀 기분이다.
아내에게 이혼당한 처지인 싸부는 옆집 사는 과부와 금방 마음이 통하고, 때마침 일어난 화재가 인생역전의 기회가 되어준다. 싸부가 기사도를 발휘해서 화마 속을 뛰어들어 옆집 모녀를 구해낸 뒤 살림을 합친다는 이야기는 너무 만화적이다. 아빠가 해장국집을 차리자 캐나다에서 급히 귀국한 아내와 아이가 아빠를 도와 단란한 가정을 이뤄나간다는 김부장네의 이야기도 어딘가 허술해 보인다. 몇 년 동안 방황하던 영준은 그동안 내키지 않던 학습만화 쪽으로 손을 내밀자 금방 밥벌이 정도는 해결되고 자신에게 맞춤 맞은 여자친구도 생긴다.
브라더스, 형제는 어려울 땐 똘똘 뭉쳤다가도 그 어려움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가기 마련이다. 망원동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낸 네 남자의 허기와 비애, 그리고 조금씩 열려있는 미래의 길을 제각각 찾아가면서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에 책장이 잘 넘어간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것을 잘 모른다. 가진 것 없이 서울에서 살아가기 위해 평범을 좇아가는 평범 이하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해피엔딩을 읽으며 안도의 웃음을 짓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그다지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삶이야말로 빛나는 무지개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완득이>나 <고령화 가족>처럼 재미있지만 거기에서 받았던 감동은 없어 좀 허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