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고 싶게 만드는 책.
사실은 표지에 이끌려서 산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거지만, 책장의 표지도 구매와 직결되기 때문에 꽤나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다고 한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만족도가 매우 높은 책이다. 원래도 일본 소설을 좋아하긴 한다만 이 책은 마치 내가 생각하는 환상 속의 일본 서점, 마을을 그대로 구현해낸 것 같다.
간략한 줄거리는 주인공인 잇세이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다니던 서점을 그만두게 되고, 우연히 '오후도 서점'이라는 곳을 맡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함께 여러가지 사건이 동시에 전개되는데, 마치 다 다른 사건인 듯 하지만 이어져있다. 이들 중심에는 잇세이가 자리잡고 있어 어느 부분보다 소설같은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지극히 현실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이야기이다. 책을 훔쳐가는 아이, 대중의 질타, 책임지고 퇴사하는 직원, 사라져가는 서점과 같은 현실의 쓴 맛이 가득하지만, 그 안에서도 「4월의 물고기」의 흥행, 주인공의 주변인들, 오후도 서점까지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들이 행복의 달콤한 맛을 보여준다.
작은 등불이면 어떨까.
언젠가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날 때는 자기 인생에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
-p.83
이 책의 초반부는 유독 시리다. 주인공은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더한 고초를 겪게 되고 종국에는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서점일까지 그만두게 된다.
영화 장르 중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히어로물이다. 멋지게 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 그런 서사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 문구를 읽었을 때는 마치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가 나의 행복을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스스로가 되고싶은 멋진 사람의 기준을 높여놓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동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챙겨주며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이는 어른들 걱정같은 거 안 해도 돼. 어른은 아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니까.
-p.250
이 소설의 주인공인 잇세이는 어른으로서 본인이 도난 사건의 책임을 지고 서점을 그만두고, 마치 열병을 앓듯이 아이처럼 고통스러워하며 힘들어한다. 이후 불안한 상태의 잇세이가 의지하고 있던 어른인 오후도 서점의 주인을 만나 점차 안정되어가는 게 독자인 나의 눈에도 보인다. 그렇게 잇세이는 곧 불안에 떨고있는 도오루라는 아이에게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어른이 되어주며 어른은 강하다고 말해준다.
어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그 누구보다 어른인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나의 부모님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어리던 시절의 부모님은 정말이지 태산같았다. 어떤 어려운 일도 척척 해결해줄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
내가 성인이 되고나니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챙겨드려야지하고 부모님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오히려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당신들도 힘들텐데 타인을 먼저 생각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어른이 되어야하는지, 그리고 그런 분들이 나의 부모임에 감사했다. 나는 누군가의 부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인들에게라도 의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싶다.
그런 잇세이에게 이 서점은 물론 서점과 연결된 사람들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고 있었던 것이다.
-p.73
그곳을 떠나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뒤에야, 아니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안식처였구나.'
-p.179
'안식처'. 보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느낌을 주는 마법의 단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안식처가 여러곳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이 제일 좋아하는 안식처인데,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원래도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제격인 장소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가 나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사실이 꽤 즐겁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본가에 가면 마음도 즐겁고 몸도 편하다. 늘 가는 길이지만 비행기를 타러 가는 발걸음은 붕 뜨고 이륙 안내 방송을 들을 때면 설렌다. 어쨌든 자취를 하면 사람을 만날 일이 잘 없어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공간으로 가는 건 참 좋다. 게다가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다보니, 환경이 주는 편안함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나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까다로운 일인 것 같다. 아무것도 구애받지 않고, 내가 나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한 군데라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꿈을 꾼다는 것. 지금보다 나아지길 바라며 고단한 삶에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 p. 104
만약 세상에 마법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고 육체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사라져버린다 해도, 기억이나 추억은 무無가 될 수 없다. 하나의 생명이 이 지상에 존재하면서 울고 웃는 날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p.263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이야기 속의 소설 「4월의 물고기」의 내용이다. 4월의 물고기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이 책을 읽은 직원들은 하나같이 '삶'에 대한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재밌는 점은 4월의 물고기는 병을 얻어 죽어가는 어머니를 주제로 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독자들은 이 책이 슬프지만 밝고, 보편적인 것을 전하려하는 듯 한다고 말한다. 언젠가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세상에 사는 모든 이를 위한, 평범한 삶 속에 반짝이는 순간을 그린 이야기라고 말이다.
오후도 서점 이야기는 서점을 주제로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속에서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을 소재로 썼다는 건 작가가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평범한 삶의 소중함이 아닐까 싶다.
근래 들어 평범하게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매일매일 같은 하루는 없고, 그 속에서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소소하게 친구들과 대화하며 웃고, 피어난 벚꽃을 보면서 봄이 왔음을 느끼고, 따뜻한 날씨 속에서 산책하는 평범한 행복이 오랫동안 지속됐으면 좋겠다.
잇세이는 초반부에 꽤나 지쳐보인다. 10년을 바친 서점을 떠나면서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랬던 그가 오후도 서점을 만나고 사쿠라노마치라는 마을을 만나면서 점차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 독자인 나의 눈에도 선히 보인다. 서점과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상처를 치유해준 것 또한 서점과 사람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독자, 즉 이 책을 지금 손에 들고있는 여러분을 위해 썼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 책을 읽고나면 당장 아무 서점이나 달려가서 책을 보고싶어진다. 내가 왜 책을 좋았했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되고, 그와 함께 얻을 수 있는 일상의 소중함과 좋아지는 기분은 덤이다. 게다가 이 책은 서점 직원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꽤 자세하게 설명을 해놔서 무심코 지나치던 서가 평대도 한 번 더 보게 만든다.
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정말 행복하고 따뜻했다. 특히나 요즘처럼 따뜻해지고 있는 시기에 더욱 읽기 좋은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