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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도서] 달까지 가자

장류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불쾌감 속에 숨어있는 유쾌함을 찾아가는 책.

이 책은 한국 2030 세대의 압축판을 그려놓은 것 같다. 이들의 상황과 배경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같은 청년의 입장으로써 이들의 성공이 부럽고 질투나기도 하고, 또 가상화폐가 등락을 반복할 때는 같이 심장을 졸이기도 했다. 속으로 '그만해야지'를 외치며 여기서 멈춰야한다는 걸 알지만, 눈 앞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만 더'를 외치는 인간의 욕망이 소름끼치도록 잘 표현되어있다.

내가 이들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았는데, 나도 아마 못 이기는 척 호기심에 투자를 시작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투자 중이기도 하고, 투자 성향 분석을 했을 때도 꽤나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성향이라고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대로 여기 주인공들처럼 모든 현금, 빛, 퇴직금을 끌어모아서 투자를 하진 않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투자성향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더욱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되었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참고있던 숨이 쉬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고도, 노력하지 않고도, 여윳돈을 손에 쥐고 싶었다. 조금만 더 넉넉하게 살고 싶었다. 문자 그대로 일확천금을 꿈꿨다. - p.249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각각 6, 9, 10평짜리 방에 거주하고 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부모의 자본이 받쳐주지 못하는 한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대학 학자금으로 인해 마이너스의 상태에서 시작하고, 사회에 나가면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데다 설상가상으로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이런 상태에서는 내가 설령 평생의 소득을 모은다고 해도 내 몸 누일 곳 하나가 없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는 계층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투자로 볼 수 있는 이득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마치 불로소득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의 기초 금융 교육이 매우 부실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12년의 필수 교육과정에서 국영수는 마르고 닳도록 배우지만 경제 기사를 보는 법은 알지 못한다. 영어 지문을 시간 내에 해석하는 법은 배우지만 정작 부동산 계약서 앞에 가면 까막눈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금융 시장에 들어갔다가 돈을 잃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일전에 기사에서 청년 세대가 무모하게 투자했다가 잃은 비트코인을 보전해준다는 뉘앙스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런 정책을 만들기 전에 먼저 금융 교육이 선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상 속에서 늘 되새기는 말이 있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는 없지만 아낄 수는 있고, 건강을 살 수는 없지만 지킬 수는 있다.' 인생에 있어서 돈은 전부는 아니지만, 없으면 불편한 건 사실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웬만한 문제는 돈으로 해결되는 편이다. 특히나 얼마 전에 읽은 <돈의 심리학>에서 매우 인상깊은 구절을 보았는데, 위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돈이 주는 가장 큰 배당금은, 원하는 걸,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돈이 주는 편리함을 안다. 그래서 돈에 더욱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돈을 추구하는 것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조금 피곤함을 느낄 정도로 열광하고 있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나도 한 발자국 멈춰가게 되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회사라는 공간이 싫은 건 사무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 탓이었다. -p.336

우리가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근은 싫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하루의 10시간 가량을 공유해야하고, 심지어 나이가 어린 사람은 막내라는 이유로 온갖 비위를 다 맞춰줘야 한다. 회사에 있는 동안은 나의 자유를 빼앗기고 어딜 가든 긴장을 한 상태로 있어야한다. 그래서 사회생활은 피곤하고 퇴근할 즈음에는 기를 잔뜩 빼앗긴 상태로 집에 간다.

여기 주인공들의 배경이 되는 회사는 기분 나쁠 정도로 현실과 닮아있다.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인 상사, 직원들끼리 어딘가 묘하게 흐르는 기류, 그 사이에서 약간의 다름으로 인해 봐야하는 눈치들 같은 것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 가상화폐로 부를 이룬 주인공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불쾌했던 건 내가 이들과 닮아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느샌가 그들에게 나를 대입해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성공을 간절하게 바랐지만 어쨌든 내가 아니기에 또 실패를 바라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읽었다.

난 은상 언니가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세 어절을 말할 때, 이상하게 마음이 쓰리면서도 좋았다. 내 몸에 멍든 곳을 괜히 한번 꾹 눌러볼 때랑 비슷한 마음이었다. -p.193

추천사에 '입체적인 유쾌한만큼이나 있을 법한 불쾌함을 사랑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계기가 된 말이다. 읽으면서 작가의 표현력에 정말 혀를 내두를 만큼 감탄했다. 일상 속에서 느껴봤을 법한 미묘한 불쾌함들을 소름끼치도록 잘 표현했다. 그 중에서도 '멍든 곳을 괜히 한 번 꾹 눌러볼 때'라는 구절은 정말 뇌리에 박혔는데, 실제로 내가 잘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긁히거나 찍힌 상처와는 다르게 멍은 견딜 수 있을만한 고통을 준다. 그런 고통에서 오는 살아있는 감각에 짜릿하면서도 우울한, 복잡한 감정을 정말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해설 중에 '세태 소설'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어렴풋이 배운 단어라 기억이 났는데, 듣고 나니 정말이지 딱 맞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의 '이더리움'은 현실의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와 맞닿아 있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빨간색 파란색 화살표에 일희일비하는 현 시대의 모습을 조금은 유쾌하고 희망적으로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주인공들과 다르게 마이너스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당장 부양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요건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다. 한 마디로 제로(0)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회에 나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던 건, 보편적인 청년 세대를 너무나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다행히 잘 해결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 씁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길고 기회는 많으니,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나도 잘 풀리기를 바라며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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