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단어를 풀이하자면 '한집에 사는 일가'를 뜻하는 말이 된다. 보통 가족을 일컫는 또 다른 단어인 '식구'를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먹는 입'이 된다. 한 집에서 함께 작고 함께 먹으며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식구요 가족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함께 살지 않는 가족도 많고, 함께 살더라도 함께 먹고 부딪히며 살아가지 않는 가족의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반대로 핏줄을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함께 먹고 자고 살아가며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가족'의 원래 의미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 [망원동 브라더스]는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투닥거리며 가족처럼 살아가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민 없는 사람은 없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망원동의 보증금 500에 월세 30짜리 8평 옥탑방에 모여살게 된, 네 남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오영준 작가는 35살의 만화가지만 현재는 일도 없고 작품 활동도 없는 백수에 가깝다. 주인공이 사는 곳이 바로 망원동 옥탑방이다. 그런데 이 집에 40대 기러기 아빠 '김부장', 황혼이혼을 당하게 된 50대의 '싸부', 그리고 20대의 공무원 고시 준비생 '삼척동자'가 모이게 되면서 20대, 30대, 40대, 50대 네 남자로 구성된 일명 '망원동 브라더스'가 된다. 여기에 60대 집주인 할아버지, 그리고 10대인 그 손자까지 1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6 남자와, 각자의 사정을 가진 '주연'과 '선화'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다채롭고 평범한, 고군분투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자든 여자든 10대든 60대든 모두가 각각의 고민과 숙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그 가운데에서 실패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지만, 결국 또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응원과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당장 눈앞에는 희망찬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멀리멀리 내다보면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매일매일 나아간다.
망원동이라는 이름이 원래 조선시대 왕족이 지은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는 정자'라는 '망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니, 내가 찍은 사진도 그럴듯해 보였다. 그래 이 옥탑은 망원정이다.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있는 척, 잘생긴 척, 아는 척 '삼척'동자에게도 그럴만한 말 못 할 가족사가 있었고, 황혼 이혼을 당한 싸부에게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모두의 인생은 각자의 이유로 어렵고 고단한 길이다. 특히 요즘 모두의 경제가 어려운 시기라 그런지 더 어렵고 고단한 인생이 많아지는 것 같다. 모두의 인생에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이제야 삼척동자가 왜 그렇게 있는 척, 잘생긴 척, 아는 척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녀석은 실제로 있는 집 자식이고, 그 정도면 훤칠하게 생겼고, 아는 것도 많다. 하지만 실제로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가득했으니 얼마나 스트레스였을까?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새로운 가족의 구성
이 험난한 인생길을 견디고 나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바로 '가족'이다. 나를 위해 마음 졸이고 고생하시는 부모님, 금쪽같은 아이들, 언제나 안쓰러운 반려자를 생각하며 힘을 내고, 또 이들의 응원과 위로로 다시 용기를 내고 험한 세상으로 나아간다. 물론 가까운 사이기에 오히려 더 상처를 주기도 하고 티격태격 끊임없이 다투기도 하지만, 가족이 주는 힘은 참 거대하다.
새로울 것 없는 세상과 새로울 것 없는 삶을 사는 우리. 그걸 용인하며 늙어가는 거다. 당연한 듯 주어진 삶. 오히려 그게 다행인 날들이다.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망원동 브라더스'는 이런 가족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비록 피 한 방울 안 섞인 전통적 의미의 가족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지지해 주는 가족 같은 존재들이다. 요즘에 1인 가정도 많아지고 결혼하지 않는 비혼주의도 많아지는 것 같다. 또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도 많아진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가족처럼 의지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느슨한 가족'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의 장점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무거운 사회적 문제들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야기 자체는 무척 경쾌하고 재미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처럼 흥이 올라있다. 그리고 읽고 나서도 씁쓸한 기분이 들지 않고 담담하고 즐겁게 책을 덮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런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