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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지은 집

[도서] 글로 지은 집

강인숙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결혼 하고 나서 달라진 것은,

지난 날을 이야기 할 때의 기준이 이 되었다는 점이다.

(보통은 이렇게 이야기했었던 것 같다. “엄마, 나 고등학교 때 그거 기억나?” 와 같이 나이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던 것이)

 

우리 미남집 살 때 있잖아.”

우리가 수영집 살 때 거기서 둘째가 태어났잖아

 

결혼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몇 번의 이사를 동반하게 되는데, 예컨대 동반자의 이직이라든가,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탄생으로 인해 우리는 예정에 없던 이사를 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지난 날의 기준은 년도(year)와 본인의 나이보다 그 때 살았던 집이 쉽게 기준점이 된다.

 

 

<글로 지은 집>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되었다. 강인숙 작가님은 최근 타계한 이어령 선생님의 반려자로, 이어령 선생님과 함께 한 평생을 살았다. 작가님은 문학평론가로 활동했고, 국문학자로서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영인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영인문학관의 영은 이어령선생에게서, 인은 강인숙작가님의 이름에서 한자씩을 따와서 지은 것이 겠구나 짐작해 본다.

 

강인숙 작가님의 신작 <글로 지은 집>의 제목은 두 가지 의미로 내게 읽혔다.

 

70년 세월의 동반자와 함께 한 인생 여정의 이야기를 글로써 적어내어 한 권의 책이 되어 그들이 살았던 물리적인 집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글로 지은 집이 되었고,

 

또 실제로 그들은 양가의 도움없이 빈 손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부부 두 사람이 직업적으로(두분 다 신임 교사였다), 그리고 작가로서 써 낸 글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좀 더 나은 생활환경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그런의미에서 이 부부가 마지막에 지은 집은 실제로 글로 지은 집이 된 셈이다.

 

나는 때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의 전반적인 것을 바꾼 결혼의 종착지에는 무엇이 있을까하는 좀 뜬금없는 생각. 어쩌면 이 책은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신혼부부는 단칸방에서, 더 이상 밖에서 데이트 한다고 돌아다니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아이가 생기며 셋방살이가 힘들어져

(주인집 어른이 이제 갓 혼자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대청마루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는 지나가면서 개 발 같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사를 결심했다. 그 심정을 너무 공감한다.)

사람들은 운이 막힌다며 택하지 않는 골목 끝에 위치한 막다른 길에 속하는 집을 얻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작은 마당이 있고, 부부가 집 주인 이었기에 그들은 그 작은 집만큼의 자유를 얻게 된다. 나는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 오기 전까지는 전세살이를 했었다. 주인집의 눈치도 보았고, 라이프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 이웃과의 공동체 생활도 겪었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 방이 하나 작은 집을 얻어서 보금자리를 잡았지만, 나는 그 어떤 자유보다도 큰 자유를 느끼며 5년을 여기서 살고 있다.

 

사 년 동안에 네 번이나 셋방을 바꾸면서, 같은 공간에서 남과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복잡한 것인가를 실감했기 때문에,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 무조건 고마웠다. 작으나마 침실이 생긴 것도 좋았으며, 골목이 조용해서 아이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그 네모난 작은 테두리가 그때 우리 자유의 폭이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p140

 

지금은 도로명 주소가 흔하게 편히 쓰이고 있지만, 그 시절 성북동, 청파동1, 청파동3, 한강로2100번지와 같은 동네를 부르는 지칭은 사뭇 정겹게 느껴진다. 나는 그 시절의 서울 모습을 거의 모르지만, 이야기를 읽으며 내 머릿속에는 글에서 보여주는 풍경을 그대로 상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셋방에서 첫 내 집을 얻었을 때의 행복한 감정을 공유하면서 나 역시 이 작은 집에서 느끼는 평온함을 다시금 떠올리곤 했다.

 

뜨는 해 밖에 볼 수 없는 어두운 집에서 우리는 5.16을 겪었고, 화폐개혁도 겪었지만, 첫 집은 첫아이 같아서 좋았던 일들만 생각난다. 한강로 2100번지. 번지수도 간결하고 이쁜 그 집을 우리는 본적지로 삼았다. 분가해서 따로 호적을 만든 것이다. 그 집에서 1961년 사월부터 만 이년 간을 살았다. 우리의 이십 대의 마지막 세월들이다.

 

p155

 

낮 동안 일을 하면서 생채기를 많이 입었다. 마음에 그대로 날아와 박힌 화살같은 말들이 계속해 떠올라서 집에 돌아와서도 울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하는 독후활동까지 이 모든 과정의 효용이란, 온전히 여기에 집중하여 마음에 어떠한 근심과 잡념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한다는 것. 그래서 저녁시간에는 옛 서울동네의 정취를 떠올리며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 마침내 이번 주 책 읽기를 마치게 되었다.

 

때로는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는 내 인생도 이렇게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당도한 곳에서는 이를 글로써 남겨 지은 집이었음 좋겠다. 오늘은 이 책에 고맙다. 글로 지은 집에서 나도 현실의 시련을 잊고, 작은 집, 큰 집, 양옥 집, 적산가옥 등 다양한 집에서 작가와 함께 살았다. 아직도 젊은 치기에 흔들리는 내게 와 닿은 마지막 문장을 갈무리하며 글을 마친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수 없듯이, 사람은 누구도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살 수는 없다. 제왕에게는 혼자 있을 자유가 없고 돈이 많은 사람이 자식이 없거나 건강이 나쁠 수도 있으며, 젊고 건강한 남녀들이 후라스코의 <8요일>처럼 사랑을 나눌 방이 없어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조용히 산다. 평창이라는 동네 이름이 소리도 의미도 아름답지 않고, 앞으로도 전철이 들어올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곳은 여전히 시설 외 지역이지만, 앞에도 뒤에도 산이 있다. 그래서 김남조 선생처럼 아름다워서 고마워요라고 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향해 말한다.

 

p368

 

*Yes24리뷰어클럽 자격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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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moonbh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23.02.05 23:07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흙속에저바람속에

    저도 이 책 출간 소식을 듣고 곧 다가올 이어령 선생님 1주기를 맞아서 기대가 되었답니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더오드님 리뷰를 통해 추측컨대 두 분이 부부로 오랜 세월 함께했던 공간인 집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시간들을 추억하며 떠오른 생각들을 풀어낸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리뷰 서두에 더오드님께서 언급하신 집에 대한 두 가지 의미가 무척 공감되어 계속 되뇌이게 됩니다.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가져보구요. 좋은 책에 대한 더 좋은 리뷰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2023.02.06 09:01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민기아빠

    우수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저도 생각해보니 아이가 태어난 집, 첫 돌을 맞이한 집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할 때 집이 다 다르네요.

    2023.02.08 16:37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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