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김영하의 에세이가 더 좋다. 소설보다는 인물에 대한 매력이 생겨 그를 추적한 편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으면서 '허가받은 거짓말'임을 자꾸 의식하는 편이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이유도 있긴 하다. 여튼 난, 그의 에세이 출간 소식을 들으면 반가운 친구를 만나듯 주문을 한다.
최근 에세이 중에는 '보다' '말하다' '읽다'가 있다. 세 동사의 제목들은 김영하의 삶의 단어들이었다. 그 점에서 신간 '여행의 이유'는 방랑소설가 김영하의 절반에 해당하는 제목이 아닐까. 그는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가 아니던가.
뉴욕에서 살던 어느 날 아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여행 가고 싶다."
"지금도 여행 중이잖아."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런 거 말고 진짜 여행."
마치 꿈속에서 꾸는 꿈 같은 것인가? 아니면, 꾸역꾸역 밥을 입안으로 밀어넣으며, 정말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말인가?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히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193쪽
한편 김영하는 호텔을 좋아한다. 최근 '호캉스'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호텔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 퉁을 놓을 수 있겠지만,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다소 의아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당연히 호텔을 좋아할테지만, 이유가 몇 있더라.
내 경우는 이렇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떠나 낯선 도시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하고, 호텔의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음을 확인하고, 방을 안내 받아 깔끌하게 정리된 순백의 시트 위에 누워 안도하는, 그런 경험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56쪽
그렇다. 단순히 호텔 자체를 좋아하기 보다는 여행의 베이스캠프 격인 호텔의 경험을 좋아하는 그 였다. 하지만 그 점에서도 나는 좀 생각이 달라서 의아했다. 내가 체크인 하기 몇 시간 전까지 누가 누워있던 방이 호텔이 아니던가. 제 아무리 깨끗하게 치웠다고 하지만 '당연히 깨끗해야지'하고 단정지을 뿐 그다지 깨끗하지 못하단 걸 누구나 다 안다. 그 점에서 내게 호텔은 그저 필요악이다. 내일을 위해 머리를 뉘울 수 있는 공간 정도면 되지. 화려한들 무엇하랴. 내 집도 아닌데.
그가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호텔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집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가?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띈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맘 먹고 언젠가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들도 있다. 집은 일터이기도 하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만 봐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니, 책꽂이에 꽃혀 있는 책들만 봐도 그렇다. 책들은 내가 언젠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그러나 늘 미루고 있는 바로 그 일글쓰기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소파에 누워 있는 순간에도 다른 작가들이 부지런히 멋진 책들을 쓰고 있다고, 그러니 어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라고 질책하는 것만 같다.
64쪽
위의 글만 보면 그는 집만 아니면 좋은지도 모른다. 내게 서재는 쉼터지만, 그에게는 일터였다. 요컨대, 난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와는 다른 생각, 그 점이 신선하고 좋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을 대변할 수 있는 명사나 동새 몇 개를 선정해 풀어서 쓴다면 좋겠다. 그래야겠다고 맘 먹었다.
'여행이 가장 즐거운 순간은 짐을 싸서 문 밖을 나가기 직전까지'라고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서 엇비슷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뜻이렸다. 하지만 이처럼 개고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여행에서만 찾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건지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남의 여행 글을 읽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 책을 왜 집어들었을까도 생각해 봤다. 우선 김영하의 글이라서, 이 글을 읽으면 그를 만나는 거라 골랐다. 두 번째는 그의 여행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싶어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였다. 일상을 모두 잊은 채 홀로 낯선 곳에서 질릴 때까지 지내다 오고 싶다. 그래서 골랐다. 그래서 각설하고 이 책을 읽은 소감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김영하의 글을 만난 며칠동안 함께 여행하다 온 기분'이라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