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검문있겠습니다!"
"아까 버스정류장에서 했는데요?"
"그럼 잘 알테니 빨리 까세요, 개새끼야~"
"......"
1990년도 봄....
조금 큰 데모가 있는 날, 오전 등교길은
지금의 케네디공항 공항검색대보다 더 살벌했다.
물론 공부를 지지리도 못해, 데모를 죽어라 많이 하는 대학을 다니게 된
이유기도 했지만, 그래서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입학을 했지만, 해도 너무 심했다.
전농집회때는 등교원천봉쇄작전이라는 미명아래, 교문앞에서 태워진
전경차로 난지도 쓰레기하치장에 버려졌다. 50여명이 함께.
달리는 버스안에서는 머리를 무릎사이에 박고 숨죽여야했다.
고개를 들라치면 하이바, 방패에 여지없이 찍히니까.
경희대에서 열렸던 전대협발대식에서 삼일동안 '전조'를 했을 때,
그토록 꿈꿔왔던 '오필리아'를 마스크와 랩을 쓰고 만났다.
교내 아마추어 야구대회 준결승전, 5대1로 앞선 상황에서는
공교롭게 발생한 데모로 대운동장에 사과탄과 지랄탄이 터져
역전패를 당했다.
미팅때 만난 수줍은 많던 S대 여대생을 위해 '사식마련을 위한
일일호프'를 주말마다 한 달간 했던 기억도 난다.
그 당시의 우리들은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누구나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느꼈다.
그 때의 나와 우리 이야기가 영상으로 표현되었다.
괴짜감독이 독특한 대사와 시선으로 만든 영화.
원작인 소설과는 또 다른 맛을 안겨주었다.
잊고 싶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기억들....
언젠가는 잊혀지겟지만, 새록 가슴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