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도 천연덕스럽게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는 사람,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의 저자 양주연은 살갑게 나에게 다가왔다. 스스로를 ENFP형 인간이라고 소개하는 저자답게, 카페에서 친구들끼리 근황을 나누는 분위기처럼 책이 술술 읽힌다. 멋지고 건강한 언니의 말에 나도 모르는 사이 푹 빠져들었다.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은 등산에 얽힌 이야기이다. 저자는 스물아홉 살 가을부터 산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 산으로는 꽤 ‘빡센’ 관악산을 선택해서 등산 다음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웃픈’ 소감을 남기긴 했지만, 그만큼 ‘짜릿’한 성취감 때문에 다음 산행을 기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29-30쪽) 내 몸에 있는 줄 몰랐던 근육들을 발견하는 재미, 속쓰림 없이 맞는 아침, 하루 종일 몸이 가볍다는 것 등등 등산으로 얻은 장점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으나,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 ‘성취감’이었다. …노력한 만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저자는 그 이후로도 등산을 계속하며, 산을 오르는 일이 꼭 인생과 같다는 사유를 남겼다. 친구들과 함께 산행하며 ‘페이스메이커’로서 사는 법을 배우고 ‘깔딱 고개’ 같은 야근을 견딘다.
(61쪽) 평소의 나라면 “어우 저는 못해요” 손사래를 치며 당장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슬픈 사실은 깔딱 고개 구간을 지나면 정상이 있다는 걸 내가 너무나 잘 안다는 것. 여기서 포기하고 하산한다면 두고두고 아쉬워할 내 모습이 안 봐도 뻔하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대부분의 산엔 깔딱 고개가 있었고 몇십 번의 깔딱 고개를 넘으면서 단 한 번도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쓰는 팁은 짧게 숨을 ‘후!’하고 몰아쉬고선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일종의 기합 같은 거랄까.
대학생인 나로서는 ‘깔딱 고개’가 기말시험 기간처럼 느껴졌다. 한 학기에 설계 팀 프로젝트를 네 번이나 진행하고, 밤을 새워 공부한 몸으로 근로를 다녀오고 곧바로 시험을 치는 일상. 정해진 시험과 프로젝트 일정에 꾸역꾸역, 과밀하게 나를 밀어 넣는 기간. 그 후 남는 건 성취감이 아니라 피로와 좌절뿐이었다. 여섯 학기 동안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고 나서야 내가 지쳤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가뿐하게 해낼 수도 있겠지만) 몸도 마음도 약했던 나로서는 죽고 싶을 만큼 우울했다.
저자도 역시 20대를 지나며 우울했던 시기,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 멈춰서 우울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지 않고, 산을 올랐다.
(77쪽) 혼자 산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실연을 당하고 나서였다.
(78쪽) 이별 직후 한 달, 이때는 정말 방법이 없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영화, 드라마, 술, 여행 등 시간을 죽일 온갖 방법을 찾다가 생각난 게 산이었다. 적어도 잠을 잘 때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어떻게든 몸을 지치게 만들어야 했다.
(80쪽) 마음이 약해질 때면 종종 혼자서 산을 올랐다. 산에서 내려올 때쯤이면 땀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들도 씻겨나갔다. 한 달 정도 혼자 열심히 산을 오르는 동안 이별의 아픔도 아물어 있었고, 덤으로 체력까지 얻었다.
(91쪽) 걷는 동안 들었던 생각이라곤 “언제 끝나지”, “점심으로 뭐 먹지”, “다리 아프다” 등 아주 원초적인 고민들이었다. 우울해할 시간이 없었다. 나의 밑바닥 감정에 대해 생각할라 치면 저릿저릿한 다리가 궁상 떨지 말라며 뒤통수를 ‘탁’ 쳤다.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래도 내게 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등산을 통해 저자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아가는 과정을 읽으며, 나도 내 주변의 산을 떠올려 보았다. 본가 근처에 심학산이 있고 자취방 뒤편에 수봉산이 있긴 하지만… 따져보니 정상에 올라본 적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산은 언제나 풍경이었을 뿐 올라야할 대상이 아니었다. 본가도, 학교도 평지에 가까워서 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멀게만 느껴졌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심학산, 수봉산은 엄청나게 높은 것도 아니고 해발고도가 각각 200m, 100m 정도밖에 안 되는데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는 게 새삼 놀랍다. 저자가 올랐던 첫 산에 비하면 아주 낮지만 작은 산부터 차근차근 가야겠다는, 나도 성취감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