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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도서]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정재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이 책은 한국 도교(道敎)의 시초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교와 관련된 모든 분야의 내용을 정리하고 연구한 책이다. 한국에서는 종교로서의 도교(道敎)란 전혀 생소한 분야였고, 노자나 장자의 이론을 정리한 노장사상(老莊思想)같은 학문적인 저작물, 도가(道家)계열의 무술, 기공 외에는 특별히 관심을 끌만한 단체나 연구 활동의 소개가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

    불로초 이야기나 신선(神仙)이야기 같은, 우리네 일상에서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일상적인 설화(說話)나 TV드라마, 무협만화, 영화 소재로서의 도교적 요소는 충실히 활용되고 있는 편이다.
 
    가령 칠성신에게 기도를 하고 애기를 점지 받았다는 전설, 중국의 성황신앙이 발전, 전래된 성황당(서낭당; 마을신을 숭배), 민가(民家)에서 부뚜막에 정화수 한 그릇을 놓고 빌면 주부들의 소원성취를 이루게 해주었다는 조왕신, 옥황상제를 만나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신약(神藥)을 받았다는 설화, 부적과 정신적인 감응력을 바탕으로 귀신을 퇴치하는 부주사(符呪師), 영화나 무협지, SF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귀신을 쫓고 선악(善惡)을 가려 응징하는 퇴마사(退魔師)등등...

    세계도교학회에서 중국도교는 근세 이전의 주요연구 과제로, 일본은 근현대시기의 연구과제로 자주 등장하지만 한국도교는 중국도교와 일본도교의 광채에 가려 있어 제대로 된 연구 열기나 주도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진 못한다.

    최근 국내학자들에 의해 한국도교의 자생설(自生說)을 중심으로 하는, 단군신화와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를 새롭게 분석, 연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도교의 발생시점이 전국시대(戰國時代), 발해만 일대에서 유행한 신선설(神仙說)에 근거하고 있다는 역사적 확증이 있고, 이 지역은 동이족의 주요 활동무대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면... 꼭 중국에서 한반도로 도교가 전파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국내외 연구자들의 의견도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단군신화의 재등장이다.  

    - 가령 칼텐마크 교수는 “산해경(山海經)”혹은 동이계 신화 등에서 현저한 조인일체(鳥人一體)모티프가 후대 도교에서의 우인(羽人), 선인(仙人) 등의 형상으로 변천해 가는 과정 등을 살핀 바 있고, 장광직 교수는 은대(殷代) 무사(巫師)의  주술적 비상(飛翔)을 도왔던 청동기상의 동물적 조력자(helper)의 신화적 기능이 후대 도교에서의 비상의 법술(法術)인 승교술(乘?術)로 발전해 간 것으로 추측했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 대해서는 메어 교수의 논구를 (후략) 1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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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교 연구는 중국도교에 대한 고찰(考察) 없이는 제대로 된 연구결과를 내 놓을 수 없다. 또한 도교의 주변지역 전파나 민간신앙으로의 전이(轉移), 국가의 성립과정에서 도교의 관련 연구, 타종교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중국도교를 심찰(審察)하지 않고서는 수박 겉핥기식의 중대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중국 도교는 원래 무격(巫覡)신앙이 발전해 만들어진 종교로 알려져 있는데 진시황의 구선(求仙; 불로초, 봉선의식)행적 등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도교는 황실과 귀족집단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는데 이른바 도교의 신권(神權)과 황실의 황권(皇權)이 결합, 정권을 장악하는 관방도교로 발전한다.

    - 무제시기(漢 武帝)를 전후하여 유학은 음양오행설, 신선사상 등 신비 사조의 영향으로 ... 중략 ... 도가와 신선가의 결합이 가속화되어 마침내 이념성, 종교성, 방술성을 갖춘 도교로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 중략 ... 정식으로 설립한 도교의 역사적 실례를 후한 순제(順帝, 126~144)때 장도릉(張道陵)이 창건한 오두미도(五斗米道)에서 찾는다. 파촉(巴蜀)의 험준한 지역에 근거를 둔 오두미도는 중앙의 통치권으로부터 제약을 별로 받지 않는 가운데 ... 후략 ... - 98, 99쪽

    남,북조의 분열된 중국을 하나로 통일한 수(隋)의 뒤를 이어 중국을 지배한 당(唐) 왕조에 이르러 관방도교는 대륙을 뒤덮는다. 전국시대에 발원한 외래적이며 변방적인 성격의 도교가 중국의 민족종교로 토착화하는 과정(갈홍, 도홍경, 육수정의 이론적 성찰과 저작물, 구겸지의 정치적 실천)을 거쳐 당나라의 황실종교가 되어 국교로 공인받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황실도 날로 세력을 더해가는 불교의 위력을 꺽을 필요가 있었고 사원경제력을 붕괴시켜 국가수입 증대를 꾀할 목적으로 도교를 공인한다. 

    물론 최초의 관방도교로 인정하고 국교(國敎)로 공인한 사람은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다. 오두미도를 숭앙하고 있던 도사(道師) 구겸지(寇謙之, 365~448)는 도사 성공흥(成公興)과 함께 숭산(崇山)에서 오랫동안 수도를 했다. 구겸지는 415년, 스스로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며 신천사도(新天師道)를 창시한다. 태상노군의 후예로부터 전수 받았다는 녹도진경(錄圖眞經) 60권에 입각하여 도교의 개혁을 추진했던 구겸지는 태무제로부터 국사(國師)로 대접 받는다. 

    송대(宋代)에도 여전히 국교로 인정받았던 관방도교는 원대(元代)에 들어서 잠깐 흥기했다가 명,청기를 거치면서 쇠퇴해간다. 원대에는 강북에 전진교(全眞敎)가, 강남에는 천사도(天師道, 후에 正一敎)가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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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류왕)7년 봄, (당고조가) 형부상서 심숙안(沈叔安)을 보내 임금을 상주국(上柱國) 요동군공(遼東郡公) 고구려 국왕으로 책봉하고 도사로 하여금 천존상 및 도법을 가지고 가서 “노자”를 강설하게 하니 임금과 백성이 이를 들었다. 8년에 임금이 당에 사람을 보내 부처와 노자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청하니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 108쪽

    - (보장왕)2년 봄, 연개소문이 임금께 아뢰기를 “3교는 비유컨대 솥발과 같아 하나라도 빠지면 아니되옵니다. 지금 유교와 불교는 모두 흥성한데 도교는 그렇지 못하니 천하의 도술을 다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청하옵건대 당에 사신을 보내어  ... 중략 ... 당 태종이 도사 숙달(叔達) 등 8명을 보내고 ”도덕경“을 아울러 하사하였다. 임금이 기뻐하며 절(사찰)을 취하여 그들의 숙소로 삼았다. -  108쪽

    당과 수교한 이후, 권신 연개소문은 불교를 억압하고(사찰을 취하여 도사(道師)들의 숙소로 삼았다는 주장이 이를 방증한다.) 도교를 수입한다. 이 때문에 고구려 중 보덕(普德)이 국가가 불교를 탄압한다는 이유로 남행하여 백제로 귀순한다.

    신라에는 중국의 단정파(丹鼎派) 도교가 수입되어 지식계층 사이에서 유행했다. 신라인 최승우, 김가기 등의 입당 유학생들에 의해 중국 내단학(內丹學)이 신라에 소개되기도 했다. 최치원은 한국 도교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도참(圖讖)과 비기(秘記) 등의 도교적 성향이 가득한 예언서(도선비기 등)가 유행했고, 고려 태조 왕건은 도교행사를 지속적으로, 대규모로 개최한다. 팔관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고려 중엽, 예종(睿宗)조에 오면 관방도교의 상징인 복원궁(福源宮)이 건립된다. 이후 수 많은 도교관련 사당과 의례기관이 설립되고 수 많은 초제(醮祭)의식이 진행된다.

    조선을 아우르던 유교는 도교의 팽창을 절대적으로 저지한다. 도교의식에 미신적인 요소가 다분하다는 이유로 고려조(高麗朝)부터 진행되어온 모든 도교관청을 혁파하고 제례의식을 간소화한다. 이 때문에 소격전(昭格殿)과 태청관(太淸觀)만 남는다. 소격전은 세조때 소격서(昭格署)로 개칭되었고 나머지 도교관련 관청과 제례의식은 사라진다. 이마저도 중종때 유교적 이상주의를 주창하는 조광조 등의 강력한 건의에 의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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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에서 면면히 이어오던 도교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일대 혁신을 꾀한다. 그 동안 칠성경과 옥추경을 애용해 오던 민중들은 귀신과 재액(災厄)을 쫓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에 가탁하여 신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왕조말기, 구세(求世)와 민족자존의 기치를 내걸고 수운(水雲) 최제우는 동학(東學)을, 증산(甑山) 강일순이 증산교(甑山敎)를 창시한다.

    - 동학(東學)은 강일순이 최제우를 선도(仙道)의 종장(宗長)으로 칭했을 정도로 도교적 요소가 농후하다. ... 중략 ... 어느 봄날 최제우는 갑자기 몸을 전율하며 자칭 상제(上帝; 옥황상제)라고 하는 초월적 존재의 계시를 듣게 된다. ... 중략 ... 호천금궐상제(昊天金闕上帝)는 도교의 최고신으로 이미 우리 민속에 수용되었던 옥황상제이다. 최제우의 이러한 종교체험은 오두미도의 장도릉, 신천사도의 구겸지 등 중국의 초기 도교 교주들의 득도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 중략 ... 동학의 교법 중에서 가장 민간 도교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은 부주(符呪; 부적)의 사용이다. ... 중략 ... 아울러 최제우는 부수치병(符水治病)이 일률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부언(附言)한다. ... 후략 ... - 136~140쪽

    - 증산교의 경우에도 우리는 동학 이상의 민간 도교적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 중략 ... 스스로를 옥황상제의 현신으로 선언하기도 하였지만, 태어날 때 선녀가 나타나고 등에 칠성문(七星紋)이 있었다는 신이담(神異譚) 등은 이를 웅변한다. ... 중략 ... 강일순의 구세(求世) 운동은 최제우와 마찬가지로 결국 지상선경(地上仙境)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 중략 ... 증산교의 요체는 해원사상(解寃思想)이다. 무속의 이른바 ‘한풀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이론은 역시 무속에  발생론적 근거를 갖고 있는 민간 도교 사상에 일찍이 출현하였다. “태평경”에서는 ‘원한 맺힘(寃結)’이 세상의 온갖 부조리, 불합리의 근원임을 ... 중략 ... 강일순의 부적 사용법도 불에 살라 물에 타 먹는 이른바 탐복(呑服)의 방식으로 중국 초기의 민간도교 및 동학과 동일하다. ... 중략 ... 강일순은 옥황상제의 칭호 이외에 천사(天師)라고도 자주 불리웠다. ... 후략 ... - 140~141쪽  

    이 외에도 설화문학에 나타난 도교적 요소에 대한 논리적인 인용이라든가,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도교적인 상징물의 해석, 조선시대 일부 사대부계층과 민간에서 면면이 이어온 단학파(丹學派)의 저작물, 이를테면 온양정씨 문중에서 개별적으로 전해오던 『북창선생시집』, 『고옥선생시집』, 『금송당유고』, 『십죽헌유고』, 『만죽헌유고』, 『총계당유고』, 『무송당유고』, 『동명선생집』등 8권의 문집을 1977년 후손 정낙훈이 합본, 영인한 온성세고(溫城世稿)의 소개, 총계당(叢桂堂) 정지승의 도교 유적 탐방기(探訪記)를 실었고 정산(鼎山) 송규 선생의 삼동윤리(三同倫理)를 도교적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끝 부분엔 한국 도교의 주요인물인 최치원, 김시습, 정렴, 권극중에 대한 인물열전을 소개했다.
 
    서두에는 한국 도교연구의 흐름을 1945년 이전과 태동기, 출발기, 전개기로 나누어 상세한 해설을 달았고 도교관련 경전 소개에도 태만함이 없다. 내 생각엔 민족종교라는 테두리를 도교적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큰 잘못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도교, 대종교, 증산교, 태극도, 대순진리회 등의 종교는 큰 관점에서 한국 도교의 한 뿌리라고 볼 수 있다.  
 
     한국 도교라는 지극히 전문적이며 이색적인 주제를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해설해 놓은 저작물은 드물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도교(道敎)에 대한 기본적인 천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면서도 전문적인 도교 서적을 접할 때 생기는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소시켜주는, 훌륭한 저작물이다. 저자는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조선중기 단학파(丹學派)의 거두였던 북창선생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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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khan

    최치원이 말한 풍류도 신교 한국 선도에서 중국도교 가지치기 갈라져 나간것 ~ 한국 강단학자들의 무지로 중국도교 와 한국선도를 구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 분명 유불선 삼합지도 라고 말했는대 도교 타령 이라니 한심
    ~ 아직도 인조반정무리 중화사상 못벗어 난 버리지들 ~ 최근발견 요하 홍산문명 흑치비문 연개소문 아들 연남생 비문 환단고기 내용과 완벽일치 천부경 환단고기 부도지 정도는 알고 이야기 하자 ~ 학문에 경지가 고루하고 졸렬하다

    2019.05.14 08:21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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