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서 들리는 게 무슨 소리냐?"
"빗방울 소리입니다."
"너는 빗방울에 사로 잡혀 있구나."
"화상께선 저 소리를 무엇으로 듣는 것입니까?"
"자칫했으면 나도 사로잡힐 뻔했지."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는 그래도 쉽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표현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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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과 악함은 경계가 없다.
경계를 만들면 선함도 욕망이요 악함도 욕망이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이다.
나도 없고 남도 없으니 모두가 온 몸이다.
혜해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선사는 수도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까?"
"노력한다."
"어떻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잔다."
"다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스님의 노력이 다릅니까?"
"다르다."
"어떻게 다릅니까?"
"그들은 밥 먹을 때 밥 먹는 일에 하나가 되지 않고, 잠잘 때도 잠자는 일에 하나가 되지 않고 이것저것을 생각한다. 그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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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옹 큰스님을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우연히... 종로에 있는 영풍문고에 갔다가... 겉표지에 있는 사진이
평화로와 집어들었을 뿐...
인용한 글들도 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현실을 이해하라는건지... 현실속에 최선을 다하라는건지... 득도는 먼데 있는게 아니고 네 발 밑에 있다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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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두 제자가 깃발을 가지고 서로 논쟁을 하고 있었다.
한 제자는 깃발이 펄럭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제자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켜보던 혜능 스님이 말했다.
"깃발도 바람도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이다."
이와 비슷한 대사가 영화 "달콤한 인생"의 첫 화면에 나온다. 이병헌의 담담한 나래이션... "달콤한 인생"은 벌써 4번이나 봤다. 화면의 격렬함이나 스토리의 역동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산다는게 알 수 없는 미로같다.
정말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짐작도 못할 어떤 숙명처럼 맞닥뜨리는 사건들이 일대혼란처럼 다가올 때...
달콤한 인생 같았으나 실은 살육이며 혼돈이라는 것... 그 가운데 스쳐가는 사랑을 움켜쥐려한... 허망한 남자의 시선이, 음성이 흔들리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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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년 전에 한 도반과 이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넌 뭐나?"
"......."
"네가 누구냐고?"
그 막막함을 앞에두고 이 책 첫장을 열어보았다.
"물 따라 흐르는 꽃을 본다"
내 마음도 흐르는 강물을 따라 유유하게, 때론 격렬하게 굽이치며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