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은 한정된 지면에 얼마 되지 않은 호흡을 늘어놓는 작업이다. 인간의 이해 폭이 커지고 사회는 복잡하게 되어 작가는 더욱 내밀화한 작품을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간을 제한하고 문장은 탄탄하고도 함축적으로 엮어야 한다. 사건은 가능한 한 축소시키고(사건이 크거나 많으면 그게 어디 원고지 80매로 서술이 가능하겠는가) 흐름을 끊어야 할 곳은 과감하게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현대 단편소설은 재미와는 동떨어지고 어려워졌다. 평론가를 통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쉽지도 않다.
함축적이고 생략되고 끊긴 곳을 이어붙이고 의미를 뽑아내는 것은 독자 몫이다. 단편소설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그러니 작가의 역량을 보려면 그의(또는 그녀의) 단편소설을 읽어보면 된다.
이 소설집은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단편 대부분이 불륜 얘기다. 그저 활자만 쫓아 읽으면 칙칙한 얘기들인 삼류소설이 된다. 삼류소설 중에서도 아주 재미없는 삼류소설.
불륜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저 '보봐리 부인'에서 바뀌었다고 믿고 있다. 어느 작가가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불륜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기 때문에 불륜이 난다고 했다. 상대방은 파탄에 이르렀는지 감지도 못하고 그저 여자가 자신의 남편을 꼬신 걸로 알고 있다.(천사는 여기에 머문다1) 물론 아래 인용글에서 ‘그녀’는 바람핀 남편의 아내를 말한다.
남자는 그녀에게 평생을 차압당했다. 그녀는 남자의 당당한 채권자이다. 남자는 보증을 잘못 선 사람 꼴이다.(p.106)
이혼 후 세 번째 연애가 끝난 후 세상에 흥미를 잃은 나정은 첫 사랑에 실패한 뒤 연애다운 연애를 못해 본 김기주를 만난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에게 맞는 남자는 아니다. 어딘가 손을 보면 자신에게 좀 맞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맥도날드 멜랑콜리아)
상대를 잃고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의 뇌는 의외로 허약하다. 한번 심리적 구조가 생기면 잘 바뀌지 않는다.(p.30)
꽉 막힌 인간, 청맹과니, 꼴통.... 나정은 첫 사람을 못 잊고 ‘원나잇’이나 하고, 여자를 사기나 하고, 늙은 부모를 혼자 책임지는 것이 꿈인 불량하고 무능하고 불우하고 답답한 남자를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다. 천천히, 서로 못 느낄 만큼 조정하며 천천히 트는 것이다.(p.35)
단편 '강변마을'은 배경 이야기가 없어 순전히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린 것으로 독특하게 다가왔다. 아빠의 외도로 사촌 외갓집이란 곳에 맡겨진 11살의 은애가 겪는 얘기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외할머니란 캐릭터였다. 배경 이야기가 없어 나는 다음과 같이 추측을 했다.
아빠는 어느 젊은 여자와 정을 통해서 그 젊은 여자를 임신시켰다. 엄마는 그 사실을 알고 열 받아서 '당신 맘대로 해요'라며 집을 나가 버렸다. 아빠는 임신한 여자를 집으로 불러들이고 건사할 수 없는 세 남매를 젊은 여자의 어머니에게 맡긴다. 그래서 아빠가 세 남매에게 둘러댄 말이 사촌 외할머니댁으로 간다, 라는 말이다. 그 사촌 외할머니(젊은 여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새끼마냥 그 세 남매를 돌본다. 하지만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서는 다시 예전의 엄마가 들어오고 젊은 여자는 아기를 키워보지도 못하고 놔둔 채 내쫓기듯 나간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전경린 작가가 쓴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서 쓴 얘기다. 그럴 것 같다, 라는 것이다. 다른 독자라면 다른 스토리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작가는 이렇게 생략한 채 툭툭 던져 놓을 뿐이다. 해석은 독자 몫이고 불륜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는 이렇게도 복잡하다. 작가는 '너희들이 불륜을 알아?'라며 독자들의 머리를 책으로 한 대씩 내리치는 것 같다. 독자는 아빠의 입장에서, 아내의 입장에서, 젊은 여자의 입장에서, 아니면 할머니의 입장에서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대학 시절, 어느 강의에서 박완서의 '살아있는 날의 시작' 소설을 두고 무수히 오갔던 토론이 생각난다. 정답은 없었다. 단지 서로의 생각을 좀더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했다. 자신이 불륜에 빠지지 않았다고 해서 불륜에 빠진 이들을 쉽게 용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너무 길게 썼다. 이 소설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하려면 한도 끝도 없겠다. 감상은 많은데 할애할 시간이 없는 게 아쉽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문장에 상당히 공을 들인 걸 느낄 수 있었다. 전경린 작가에 대해 어느 기자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작가는 책을 쓰는 중에는 모든 연락을 끊고 몰두 하는 스타일이라서 연락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렇게 빚어낸 글을 읽는다니 독자로서는 영광이다. 재미없다고, 칙칙하다고 투덜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