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사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우리 자신에 대해서만큼이나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많은 부분이 오해일지도 모릅니다. 꼭 그들을 좋게 봐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이러한 게 장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는 식의.... 여튼 중요한 건 어떤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볼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들 모습을 직시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본 헌법에는 프라이버시권이 없다(p57)." 사실 명시적으로 프라이버시권이라 하지 않아도 어느 나라의 헌법이건 기본권을 보장하는 체제라면 당연히 해석상 권리 장전에 포함된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이 책에서도 "당연시되는 여러 권리를 전부 문장(문언. Wortsinn)으로 보장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합니다. 또 다음 페이지(p58)에서 "이 권리는 인터넷에서 잊힐 권리로까지 발전하였다"는 비교적 최근의 사정도 덧붙입니다. 여튼,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일찍 근대화를 달성했다는 그들이, 정작 어느 나라에서도 보장하는 여러 권리들의 해석, 보장에 대해 이처럼이나 소극적이라는 건 의외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프라이버스권 관련해서, 재일동포 출신인 유미리 작가와 얽힌 소송도 소개합니다. 1980년대 중반 이분께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아쿠다가와 상을 받았다고 해서 당시 한일 양국엑서 큰 화제가 되었다고도 하죠. 우리가 유념해야 할 건, 2013년 아베 신조 내각이 도입한(p59) 마이넘버 제도에 대해 "프라이버시권 침해"라는 비판이 일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이 비슷한 제도를 1969년에 도입했고, 지금도 열 손가락 지문 날인이 당연하다는 듯 시행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거의 전혀 기본권 침해라는 비판이 일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 못 할 기준이라면, 이걸 갖고 남을 비판하는 건 어느 정도는 자기모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법부의 최고 기관을 "대법원", 여기 소속된 최고 법관을 "대법원장과 대법관"이라 부르지만 일본은 "재판소"라는 말을 쓰고 소속된 법관은 "재판관"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내각총리대신이 한 명의 장관을 임명하고 나머지 재판관은 내각에서 임명한다는 설명이 책 p39에 나옵니다. 얼핏 보면 삼권 분립의 원칙에 위배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국도 헌법재판소의 경우 3인은 대통령, 3인은 국회, 3인은 대법원에서 뽑으니 사정이 판이하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책에서는 일본의 최고 재판소가 한국의 대법원+헌법재판소 격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도 마찬가지라서 정치성, 위헌성 심사 기관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제3공화국 시절 저런 체제였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이처럼 활성화한 건 6공화국 헌법(현행 헌법)이 들어선 후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국민 권익 구제 면에서 우리 시스템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오쓰 사건도 소개됩니다. 이 사건은 청일전쟁과 러일 전쟁 사이에 터졌는데 한국은 당시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아관파천 등으로 고생할 무렵이었죠. 이 사건은 나중에 러시아 활제에 즉위하는 황태자가 중상을 입은 걸로도 유명한데 책에서는 일본 사법부 독립의 계기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라면 사법부 독립의 진정한 계기가 무엇으로 기억될까요? 아니면, 21세기가 1/5 장도나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독립된 사법부를 갖긴 한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국의회라는 표현은 독일 통일(1871) 과정에서 처음 쓰였고 이를 당시 유럽을 열심히 모방하던 일본이 갖다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프랑스를 열심히 따라하던 그들이었으나 1871년 나폴레옹 3세가 전쟁에서 지고 유럽 대륙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상실함에 따라 일본도 롤모델을 급히 바꿨지요. 저자는 이런 일본의 의회 제도에 대해 "중의원 해산의 경우 우리 나라에는 없는 제도여서 신선했다(p30)"는 평가를 합니다. 한국의 의회는 4년마다 재구성되어 민의를 주기적으로 반영하지만 경우에 따라 의회 구성이 그 사이 크게 바뀐 정치적 지형이나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해산 후 총선 실시가 답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의회의 반대를 못마땅해한 특정 지도자나 세력이 해산권을 남용할 수도 있겠죠. 해산을 당하면서(?) 만세 삼창을 외치는 전통이 약간은 코믹하기도 한데 책에서는 이 유래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일본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소위 정치 몀문가들 사이에 일종의 세습이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20여년 전 한국에서도 얼굴과 이름이 꽤 알려진 고이즈미 준이치로도 그런 유형이었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 정치를 합니다(p79). 일본에서는 가업(라면집이라든가)의 오래된 승계가 큰 미덕으로 꼽히지만 정치에까지 그런 논리가 통할 수는 없죠. p75에는 일본이 1994년까지 중선거구제를 채택했다는 설명이 있는데 우리도 유신 체제와 전두환 정부에서 1선거구 2인을 뽑는 시스템이었죠. 자민당은 거대한 정당이지만 여러 개의 파벌로 나뉘었는데 이 책에서는 알기쉽게 그들 파벌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따끔한 비판을 가합니다.
일본 정치사는 두 명의 이치로로 요약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나카 가쿠에이, 다케시타 노보루, 기시 노부시케, 사토 애이사쿠,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쟁쟁한 거물들이 각 시대를 주름잡았으나 이 책에서는 하토야마 이치로와 오자와 이치로를 듭니다. p79에는 아직 그가 총리를 지내지 못했다고 나오는데 그가 정계의 실권자로 등장한 게 그처럼이나 오래되었고 이제 노년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직 가망이 안 보이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이 사람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백범 김 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중입니다만 p106을 보면 일본이야말로 부동산이 죽지 않는다는 오랜 믿음이 지속되어 온 곳입니다. 책에서는 또한 이런 신화를 조닌(町人) 전통과도 연결(p107)짓습니다. 더군다나 1970년대 정계 실력자였던 다나카 가쿠에이는 다름 아닌 토건 사업가로 일어서서 초졸 학력을 극복한 입지전적 인물이었죠(물론 부정부패의 화신이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본 경제의 전성기에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그야말로 확고부동이었으나 이후 소위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면서 빈집투성이 거리가 속출하는 등 지금 보는 대로입니다. 한국은 현재 부동산 가격 폭등 때문에 힘들지만 앞으로는 과연 어떨지요.
우리 나라도 세대간 갈등이 심각한 수준인데 일본은 각 시대마다 독특한 세대 규정을 하는 게 또 전통입니다. 이 책에도 p124 이하에서 각 세대별 특징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 X세대, MZ세대 등은 각각의 개성이 있으나 일본의 저런 세대 구분처럼 개성이 도드라지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대론만 재미있게 읽어도 일본 현대사를 다 꿴 느낌입니다.
일본 민중은 한국과 달리 지배층이나 질서에 순응하는 민족성으로 잘 알려졌지만 이 책 p143 이하에서 잘 보듯 투쟁을 할 때 모든 것을 다 걸다시피하고 분연히 일어서는 모습도 없지 않습니다. 또 중세에는 이른바 잇큐라고 해서 대대적인 봉기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헌법에 있는 생존권은 구체적인 권리가 아니라 국가방침에 불과"할까요?(p165) 이 논의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 헌법학에서도 다루는 테마입니다. 이른바 프로그램 규정설, 구체적 권리설, 추상적 권리설 등이 대립하고 있죠. 현재 한국의 한법학계는 진보 성향이 주류라서 권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데 주저함이 없지만 일본은 이 책에서 설명하듯 사정이 다릅니다.
제국이란 단어가 무색하지 않게 일본은 한때 프랑스가 지배하던 인도차이나,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인도네시아, 미국 세력권인 필리핀, 영국 지배하의 버마(현 미얀마)까지 모두 침략하는 엄청난 세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한테 핵 두 방을 맞고 무조건 항복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일본이기에 원자력을 대하는 태도는 남다른 게 당연합니다. 이걸 제대로 관리를 못 해서 십 년 전에 큰 재앙을 맞기도 했죠.
이 책에도 나옵니다만 플라자 합의 때 일본은 국제경쟁력을 잃고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대폭 오른 자국통화가치 덕에 해외 투자도 늘렸고 특히 해외 부동산 보유 면에서 일본은 독보적인 지위를 갖습니다. p200 이하에 자세히 나오지만 브라질과 일본은 특히 긴밀한 관계인데 비단 브라질뿐 아니라 일본인들이 근 백 년 전부터 꾸준히 이민을 간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게 플라자 합의를 통해 환율이 대폭 오르자 일본인의 부동산 투자가 가속화한 면이 분명 있습니다.
동일본 대진재 당시 방사능에 오염된 땅과 사람들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언론은 "도하나의 차별 사유"가 생겼다며 원전 피해 자체보다 사회적 병폐를 우려했죠. 희한하게도 일본은 사회에 각종 차별이 존재하고 학교에서의 이지메도 몹시 심합니다. 이 책 p220 이하에도 부라쿠민 차별이 있는데 반면 한국은 천민 거주 구역 명칭이었던 "부곡"이 아직도 곳곳에 남았으며 아무 거부감 없이 통용되는 게 대조적입니다.
동아시아인들은 대개 세속적입니다. 서양인이나 중동인, 인도인처럼 종교에 침잠하는 일이 적고 다른 걸로 싸웠으면 싸웠지 종교로 큰 분쟁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일본도 불교를 한때 깊이 믿었으나 오다 노부나가의 시대를 겪으며 불교의 기반이 많이 훼손되었고 세속화의 길을 급격히 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장례식만큼은 절에서 하는(p262)" 정도에 그치지만 여튼 오랜 종교 문화의 흔적은 그대로 남았으며 마치 한국 산 곳곳에 명찰이 남아 역사를 증언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일본은 이처럼 우리와 많은 모습이 닮기도 했으며 또 많은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문화사의 각종 개성은 그들 심성에 깊숙이 숨은 어떤 본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문화사는 확실히 재미도 있으며 동시에 뭔가 깊은 성찰의 소재를 우리에게 던져 주기도 합니다. 일관되면서도 비판적이고 그러면서도 객관적이며 덜 감정적이고 덜 편향적인 저자의 시선이 특히 좋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갖기 힘든 태도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