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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인도

[도서] 어느날 인도

이상혁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인도라는 땅이 얼마나 크고 광막한지는, 가 보고 직접 체험하지 않은 이들은 모릅니다. 절대 알 수 업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도보다는 미국이 훨씬 큰 나라입니다. 커도 조금 큰 정도가 아니라 면적상 세 배가 넘습니다. 국토만 큰 것이 아니라 경제력 역시, 인구당 수치, gross 넘버, 공히 압도적입니다. 그런데도 양국을 다녀 와 보면, 오히여 미국보다도 인도가 더 큰 나라 아닌가 착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잘살게 된지 얼마나 오래라고, 가난한 나라를 볼 때면 으레 드는 우월감 따위가 있게 마련이죠. 그런 근거 없는 속물 의식이 어느 정도 시야를 가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여전히 큰 나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여기서 "크다"고 하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위엄이나 파워 따위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알면 알수록 내가 부족했구나 하는, 늪 속에 발이 푹푹 빠져 들어 신체 겨냥이 힘들다 할까, 그럴 때의 막막함에 보다 가까운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광막한 나라를 잠시라도 체험한 후, 그 느낌과 생산적 감상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건 오히려 무망한 일입니다. 정서적 흥취나 짤막짤막한 단평, 개인적 소회만 적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글쓴이의 솜씨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애초에 인도라는 나라를 글자 몇 개, 숫자 약간량으로 표현하는 일이 지극히 어렵고, 유한한 생을 살아 온 개인의 짧은 소견으로 그 유구한 역사를 지닌 땅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 잘 먹혀 들 가망이 없어서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시(詩)"로 뭘 시도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 동양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타고르도 본업이 시작(詩作)이었고, 헤르만 헤세의 대표적 <싯다르타>의 다른 이름은 <인도의 시>이기도 했습니다. 피사체가 지나치게 거대할 때에는 시의 초공간적 속성을 수단으로 전체의 얼개를 바라보는 편이 낫다는 이유도 이에 한몫 거들지 않을까 합니다.


이 책은 세 사람의 공저자가 쓴 책입니다. 한국 호적에 등재된 정식의 이름이 있지만, 이들은 마치 영화 <맨 인 블랙>에 나오는 요원들마냥, 익명에 가까운 이니셜(J, K, 그리고 SANGJA라고 합니다)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 의도가 뭔지야 독자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겠지만, 피사체의 찰나적 인상이나 시적(詩的) 감흥을, 주체의 신원을 최대한 숨긴 상태에서 무책임한, 따라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포착하고자 할 때에는 이런 방식도 꽤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인도를 줄글이나 논리적 사고를 통해 그 윤곽조차 포착하는 작업이 가망 없다는 전제 아래에서요. 지금까지 인도 여행을 소재로 한 여러 책들이 나와 있었고, 그 중 <그곳에 가면 사랑하고 싶어져>는 리뷰어 클럽 작년 2기에 미션으로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만큼이나 인도 여행서가 많이 나왔지만, 지금 이 책과 같은 포맷은 또 처음이라 독자로서는 신선하고, 또 행복한 체험입니다.


"장(章)"은 독특하게도 "잡화 꾸러미"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저자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은 진짜 인도였을까?" 마치 거리 어느 구석에서나 "보편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노인이 꾸린 잡화점처럼, 모호하고 질서 없는 가운데 모락모락 피어나는 신비함처럼, 인도와의 마주침이란, 혹은 사귐이란, 그렇게 다차원적인 미완성으로 겪어 내고, 또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 아닐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리듬

이는 저자들에 따르면 낙타와 친한 녀석이라고 하는군요. 일찍이 니체는 탄생이라는 업보와 고통을 안고 세상에 나온 생령들 가운데 이 낙타를 가장 불쌍하고 저주 받은 운명으로 꼽은 적이 있었지만, 그 역시 철저히 인간의 관점만을 앞세운 단견일 뿐입니다. 낙타 입장에서야,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 무언의 수행과 고난을 통해 보는 이에게 무엇을 가르칠 의도로 그러는지야 누가 알겠습니까? 인도는 참으로 극명한 모순이 엇갈린 땅입니다. 지독히도 내팽겨지듯 엉망으로 정비된 땅에, 과연 안전점검을 받기나 하는지가 의심스러운 만원 버스, 그리고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향긋하고 내일을 바라는 희망섰인 내음이 풍기는 게 아닌, 그저 더럽기만 한 빨래, 이 둘의 공통점은, 그 동작의 파동 끝에 리듬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리듬의 주기가 너무 길면(따라서 진동수가 작으면) 인간은 그 유장함을 제한된 인식 능력으로 미처 깨닫기 어렵습니다. 인도가 그 지나치는 객(客)들에게 노출하는 리듬도 이와 같습니다.


거리

다녀오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인도는 이 Rickshaw라는 것이 대중 교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그 과속하는 행태나 무법상 역시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죠. 저자는 자신이 탄 릭샤와, 바로 그 옆을 스쳐지나가던 다른 릭샤로부터, 엄청난 속도의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물론 이는 체감의 속도일 뿐입니다. 자, 그런데, 이런 체감의 속도를 물리학 용어로는 이른바 상대속도라고 합니다. 모든 물리량의 측정과 발현도 결국은 relativity에 좌우될 뿐이라는 데에는, 현대인 누구나가 다 동의하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저 기나긴 역사와 광대한 넓이, 심오한 폭을 지닌 아대륙의 정신 세계를 측량하는 현실의 척도가 부재하다는 사실 역시, 이 짧디짧은 순간의 두 릭샤의 교차, 조우로 잘 상징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그를 바라보는 눈과 눈의 청탁과 사잇각의 첨도(尖度)에 달려 있다고나 할까요.


공존

소를 엉뚱하게도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는 인도에서, 개만큼은 여전히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이런저런 발길에 채이는 신세입니다. 그 개들의 옆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의 취급을 받지 못하는 불가촉 천민이라는 존재가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피사체들의 묘한 연관 지점에, "공존"이라는 키워드가 놓여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도는 차별과 공존, 화해와 거리두기가 묘하게 공존을 이루는 나라입니다. 이 공존의 논리는 참으로 뿌리 깊고 오묘한 질서상을 담고 있어서, 불가촉천민 그들도 자신의 신분을 받아들이고 저 피안에서 요구하는 거대한 룰을 일상에서 실천하기에 바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인도는 지금 과거 정체 속에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던 시기가 아니라,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활기찬 경제적 발전의 현황을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도시로 진출하면, 그가 과거에 뭘 하던 사람인지, 출신 카스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고, 아무도 캘 수 없습니다. 우리는과거 개발기에  호적을 세탁하고, 족보를 조작하고, 한자 한문 한 마디 모르면서 엉터리 조상을 들먹이고 신분 위조에 나섰습니다. 헌데 인도인들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Let It Be. 공존의 유장한 리둠과 구속력을 아는 까닭이라고 하겠습니다.


경계

공존이 있는가 하면 여전한 경계지움 역시 인도인들의 의식에서 떠나지 않는 롸두입니다. 똥, 그렇죠, 사방에 널린 것이 똥입니다. 과연 이 나라에 위생이라는 관념이 있는지 의심스럽게 하는 주제가 바로 똥입니다. 전근대를 넘어서 근대의 빛을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밝히고자 하는 시도, 그 구체적인 영조물이 "학교"인데요. 이 "학교"역시 경계를 신비스럽게 표상하는 존재입니다. 속도과 질주를 대륙에 선포하는 기차와 고속도로 역시, 이 경계의 본질을 자국인과 이방인에게 깨우쳐 줍니다.


소란이색(異色)을 거쳐 모든 모호함의 집합체인 명멸로 승화하고, 마지막에 남은 것은 얼굴, 얼굴입니다. 사실 이 책은 부제를 "얼굴"로 잡아도 좋겠다 여겨질 만큼, 많은 얼굴 사진들이 제시된 편집입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사실 이  "처음"이란 저의 표현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의 모상이자 대리인이기 때문이죠)은 "아지"입니다. 그는 한국처럼 모든 것이 엄격한 프로토콜에 의해 작동되는 나라에서라면 용납이 안 될 허술한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입니다. 기억을 잘 못할 뿐 아니라,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기억을 왜곡하기까지 하는" 습성을 가졌다고 합니다. 문제가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를 거쳐가는 객들에게는 없던 문제도 잔뜩 만들어 선사할 타입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잘생긴 전형적인 아리아인 타입입니다. 본디 인도는 영국인들보다 훨씬 앞선 시점에 프랑스인들이 도래하여, 플라시 전투 이전 시대만 해도 더 기세좋은 보무로 대륙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파이 이야기>의 소재로도 쓰인 퐁디셰리(Pondicherry)라는 모호한 권역을 형성하고 있죠. 저자들이 만난 제러미, "인도는 그저 재떨이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멘트를 날리는 중년 구도자(?)도 그 중 하나죠. 수염을 멋지게 키운 채 제 할 일만 몰두하고, 돈에 관련된 소통에만 귀한(?) 에너지를 할당하는 얄미운 사내들도 다 그런 풍경의 일부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을 풍경이나 보듯 외면하고, 시대의 대세인 금전의 획득에만 전 신경을 곤두세우며, 타지인들이 궁금해하는 정신적 가치와 종교적 열정에 걸쭉한 침을 뱉습니다. 그런 혼란과 난맥 속에 인도의 태양은 오늘도 지고, 내일도 저 멀고 흐린 달의 꽁무니를 좇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지를 부옇게 물들이고 나설 것입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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