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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도서]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빅터 프랭클 저/마정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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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삶의 의미'와 '시련에 대한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살아갈 용기와 힘을 주는 책이다. 유대인을 강제로 수용했던 아우슈비츠, 다하우 등 강제 수용소, 다시 말해 제목 그 자체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자유는 존재하였으며, 삶은 의미로 충만했다.


빅터 프랭클은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고, 참혹한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경이로운 일화들을 세상에 알렸다. 강제 수용소의 경험으로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를 창시하고, 많은 이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는 빅터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해방 된 이후 세 차례의 강연을 하였는데, 그 세 강연 내용을 엮은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과 로고테라피에 관한 내용이 중점적이라면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는 인생의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2020년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시기를 관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현상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비대면, 마스크 착용 의무화, 거리두기 등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었다.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외출 및 모임 자제. 우리의 삶은 좁혀져 갔다. 언제 병에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 기약 없는 바이러스와의 싸움, 그로인한 행동의 제약은 사람들을 예민하게 그리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무기력한 나날들이 지속되면서 점점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그 때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한다. 우리 모두가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요즘 꼭 필요한 태도이다. 피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 낙관을 찾는 태도야 말로 힘든 이 시기를 버틸 수 있는 중요한 자세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련은 어떤 의미일까? 빅터 프랭클은 우리는 삶의 의미를 물을 수 없으며, 우리는 그저 인생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 답변자라고 말하고 있다. 시련의 의미를 묻는 대신 시련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물을 수 없고 - 인생이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 답변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대답해야 하는 자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물음, '생사의 문제'에 답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p.32)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를 읽고 난 뒤에는 '삶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곧 '내가 삶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뜻이 된다. 내가 삶에 어떤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삶에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삶에 '예'라고 말하는 것은 온갖 상황에서도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 온갖 상황에서 가능하기도 합니다. (p.115)


빅터 프랭클은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거나 묻지 않아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삶이 내게 바라는 것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삶이 내게 바라는 것을 찾는다면 우리는 그 순간 삶의 목적이 생기고 삶은 더욱 의미있게 변한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주어진 환경(운명)에 선택권을 넘기면 안 된다. 삶이 우리에게 제공한 기회를 환경(운명)이 결정 짓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삶의 물음에 성실히 답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삶은 언제나 의미 충족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고, 따라서 항상 임의적(선택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의 현존재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의미 있게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지요. 인간은 숨을 쉬고 의식이 있는 한 삶의 물음에 모두 대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p.41)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택에 대한 결정 대다수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흘려보낸다.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귀찮아서, 이쪽이 손해를 보지 않으니까. 그렇게 내려진 결정들은 훗날 분노와 후회, 그리고 허무함을 가져온다. 삶의 물음에 대해 모두 대답해야 할 책임이 따른다면, 그 대답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므로.


지금 우리에게 삶은 어떤 물음을 던지고 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또 무엇인가. 나는 그 대답을 성실히 하였는가. 그리고 그 대답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가.


미래, 곧 나만의 미래와 나를 둘러싼 일과 사람들의 미래가 - 아주 미미할지라도 - 매 순간 나의 선택에 달렸다는 걸 아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내가 내린 선택으로 실현할 것, '행동한' 것을 현실 속으로 구조해서 사라지지 않게 간직합니다. (p.114)


삶의 물음에 내가 내린 선택으로 행동한 것을 현실 속으로 구조해서 사라지지 않게 간직 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시련 속에서도 낙관을 찾고, 환경(운명)이 나를 지배한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우리는 의미있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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