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겨울이 끝날 무렵, 작약을 꽃 피울거라고 화분에 심어 열심히 달력에 표시해가며 물을 주었다. 싹이 트고 키는 커갔지만 잎사귀가 비실비실거렸다. 아파트에서는 햇살이 차단되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상태라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보기 안타까워 마당있는 집으로 고이 모셔드렸다. 식물을 키운다는게 쉬운게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식물 키우는 에세이는 여성 저자가 많고, 이 책도 당연히, 그리고 저자 이름을 보고 으레 여성일거라 생각했는데, 삽화 그림이 이상한데? 남자처럼 입을수도 있겠지하며 계속 읽는 중간에서 '아저씨'라 단어가 툭 튀어나온다. 엉? 뭐지? 식물에 대한 생각이 섬세하고 아기자기했던 내용에 뒷통수 맞았다. 담배 이야기 나와도 '여자도 필수 있지' 했건만.. "앵두나무는 내게 시집을 왔다."(p31) 저자가 남성이라는 각인 후 읽는 글은 새로운 기분으로 와닿는다.
여러 식물들과 교감을 나누는 시인은 삶의 고적함을 하소연하지만 좋아하는 연두의 색감이 그에게 힘을 주고 있는 듯하다. 생의 어떤 기억들이 자라는 꽃밭에서 백합과 작약에서 부모를, 다알리아 꽃을 보며 큰누나를 생각하며 마음이 놓이는 행복을 느끼는 모습에 꽃밭에 대한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마당의 꽃밭에서 시인의 아기자기한 식물에 대한 사랑과 밤의 식물 세계에서 펼쳐지는 환상을 보면서 마당있는 시골집으로 이사가고 싶은 생각이 계속 밀려든다. 그리고 시인이 소개하는 몇 가지 식물들, 특히 불두화와 수국, 극락조화와 여인초를 구별하는 시간도 가지고 애틋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현실 세계에서 소외되고 단절된 어느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로 와서 고난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끝내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실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또 다른 현실 세계의 발견이니까"(p38)
시어로 반죽해놓은 듯한 에세이가 맛깔스럽고 천천히 음미하게 하는 느긋함을 가지는 시간이 되었다. 어떤 날씨면 서오릉 꽃집거리에서 길을 잃고 판타지에 빠져 꽃구경하는 시인을 만날수 있을까? 아니면 채송화 옆에 쪼그려 앉아 헤벌레 웃고 있는 시인을 모르고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톱픽,
"식물은 즉각적인 움직임도 없고, 매일의 드라마도 없고, 매일의 이야기도 없다. 한 계절쯤은 흘러야 이야기도 할 게 있고, 한 일년쯤 지나야 기억할 무늬도 생긴다. 오래 두고 바라볼 대상이니 너무 애쓰지 말고 바라봐야 한다. 어떤 날은 아주 없는 듯, 마치 식물로부터 잠시 놓여난 것처럼 식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식물만 그런가, 사람도 그렇다."(p122)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