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기록에 의해 약을 이용하다.
약을 발견하고 활용할 줄 아는 생명체는 의외로 많다.
예를 들면, “남미에 서식하는 꼬리 감는 원숭이(‘카푸친 원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학명은 Cebus다)는 방충제를 이용하는 방법을 안다. 이 원숭이들은 노래기를 발견하면 잽싸게 잡아서 자기 몸 여기저기에 문지른다. 노래기가 방출하는 화학물질 벤조퀴논(Benzoquinone)을 몸에 바르면 뱀이나 해충 등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는 곤충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불나방 유충은 기생파리가 제 몸에 알을 낳으면,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나도독미나리속의 독당근(Conium) 같은 독성식물을 찾아 먹는다. 이렇게 독성식품을 뜯어 먹은 불나방 유충은 독초를 먹지 않는 녀석들보다 생존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pp. 20~21]
하지만 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연에서 약을 찾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 인간은 기록에 의해 약을 이용했다. 심지어 <독과 약의 세계사>의 저자인 후나야마 신지교수가 “인류는 독과 약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와 점토, 종이 등의 기록 수단을 발명한 것처럼 보인다.” [p. 22]라고 말할 정도로.
만약 이 약이 없었다면......
역사에는 만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만약 그 때 그 약이 없었더라면’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10가지 약을 골랐다.
즉, 바스쿠 다 가마와 마젤란 일행이 비타민 C를 섭취하여 괴혈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과연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굴림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말라리아의 특효약인 퀴닌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이처럼 ‘만약’을 활용해보면, 어떤 병에 대한 치료제가 언제 발견되었는가가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아니라 ‘병(病)과 약(藥)의 투쟁’으로 보는 셈이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각각의 약에 얽힌 일화들을 중심으로 2장에서 11장에 걸쳐 풀어놓았다.
2장 세계사의 흐름을 결정지은 위대한 약, 비타민 C
3장 인류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 말라리아 특효약, 퀴닌
4장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지난 약, 모르핀
5장 통증과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약, 마취제
6장 병원을 위생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 소독약
7장 저주받은 성병 매독을 물리쳐준 구세주, 살바르산
8장 세균 감염병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 설파제
9장 세계사를 바꾼 평범하지만 위대한 약, 페니실린
10장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약, 아스피린
11장 악마가 놓은 덫에서 인류를 구한 항 HIV약, 에이즈 치료제
물론 약 하나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흐름의 세기 정도는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는 특이점으로써의 역할은 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쉬우면서도 재미있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에 해당된다고 할까?
단점으로는 일본인이 쓴 책이다 보니 너무 일본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부분이 곳곳에 보인다는 점이다.
부담 없이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