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렬지(炸裂志)>의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화산 폭발로 쑹이현[嵩伊縣] 퓨뉴산[伏牛山] 주변이 갈라지고 터지자 그 곳에 살던 이들이 달아나 바러우[?樓] 산맥에 정착해 ‘자례[炸裂]’ 마을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 지주인 주씨와 소작농인 쿵씨가 갈등을 빚고 다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쿵밍량[孔明亮]이 등장해 아내인 주잉[朱潁]과 권력을 다투면서 자례 촌(村)을 대도시로 성장시켜가는 과정이 그리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이다. 물론 이를 위해 쿵밍량 부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물질적 가치가 우선하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성공 신화를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영화 <성공시대>(1988)의 주인공 김판촉(안성기 扮)처럼.
하지만 읽는 법은 다양하다.
첫째,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몬태규(Montague) 가문과 캐퓰렛(Capulet) 가문의 대립처럼 쿵가[孔家]와 주가[朱家]의 권력투쟁이라는 시점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쿵밍량에 의한 자례 마을 흥망기(興亡記)로 읽을 수 있다.
셋째, 중국식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 혹은 신실주의(神實主義)가 어떤 것인지 음미하는 것이다.
첫째, 자례[炸裂] 마을의 쿵가[孔家]와 주가[朱家]의 투쟁
자례[炸裂] 마을의 주요한 가문으로 쿵가[孔家]와 주가[朱家], 그리고 청가[程家]가 등장한다. 각각 보았을 때는 무심코 넘기게 되는데, 한 데 모아보니 공자(孔子), 주희(朱熹) 혹은 주자(朱子), 정호(程顥)와 정이(程?) 형제를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쿵가는 유교(儒敎)의 창시자인 공자(孔子)의 후손을, 주가는 성리학(性理學) 혹은 정주학(程朱學)의 완성자인 주희(朱熹)의 후손임을 자청하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더욱 부추키게 된다. 작가는 왜 쿵가[孔家]와 주가[朱家], 그리고 청가[程家]를 선택한 것일까?
일단, <자례지[炸裂志]>의 내용을 살펴보자. 본격적인 이야기는 새똥 때문에 사형(死刑)을 선고받은 쿵둥더[孔東德]의 귀향에서 시작한다.
과거 농기구를 망가뜨려 ‘사회주의 기물 파손죄’로 감옥에 갇혔던 쿵둥더에게 뜻하지 않는 불행이 발생했다.
“어느 날, 쿵밍량의 아버지 쿵둥더가 몸을 수그리고 김을 맬 때 새똥이 등에 떨어졌다. 하얀 옷에서 땀과 합쳐진 새똥은 중국 지도 모양으로 번졌고 쿵둥더는 보름 동안 옷을 빨지 않아 내내 새똥 지도를 등에 그리고 다녔다. 그러다 누군가 그것을 발견해 촌장(村長) 주칭팡[朱慶方]에게 고발했다. 주칭팡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공사에 알린 다음 현에도 보고했다. 결국 쿵둥더는 다시 감옥에 갇히고 중형[정확하게는 사형(死刑)]을 선고받았다.” [p. 25]
옷에 중국 지도 모양으로 번진 새똥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다니!!!
이렇게 누가 고발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쿵가의 원한이 촌장인 주칭팡에게 갈 수 밖에 없다.
운이 좋게도, 아니 운이 나쁘게도 인가? 12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귀향한 쿵둥더의 둘째 아들 쿵밍량[孔明亮]은 도둑질로 만위안호가 되어 주칭팡을 쫓아내고 새로운 촌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마을 사람들의 가래침으로 질식사 시켜서 원한을 갚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마을을 떠난 주칭팡의 딸 주잉[朱潁]은 유흥업에 종사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금의환향(錦衣還鄕)한 셈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산 촌장 자리를 넘기는 대가로 쿵둥더의 아들 쿵밍량[孔明亮]과의 결혼을 얻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잉은 자신의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이용해 쿵밍광의 가정을 파괴하고, 쿵밍야오를 군에서 나오게 했다. 나아가 시아버지인 쿵둥더도 복상사시킴으로써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 이로써 쿵밍량과 주잉의 부부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당신 아버지는 쿵씨 때문에 가래침에 숨이 막혀 돌아가셨지. 우리 아버지는 당신 주씨 때문에 돌아가신 뒤에 8대가 흘러도 씻지 못할 가래침에 뒤덮였고. 그러니 우리의 은원관계는 끝났어.” [p. 341]
둘째, 쿵밍량에 의한 자례 마을 흥망기
새똥 때문에 12년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귀향한 쿵둥더는 네 아들에게 “모두 나가거라. 지금 당장 나가서 각기 동서남북으로 걸어가. 돌아보지 말고 계속 가다가 무엇을 만나거든 허리를 굽혀 주워라. 그 물건이 평생 너희의 운명을 좌우할 게다” [p. 28]라고 말한다. 마치 돌잡이하는 것 같은 이 말은 일종의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분필을 주운 첫째 쿵밍광[孔明光]는 교육자가 되었다.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인장석(印章石)을 주운 둘째 쿵밍량[孔明亮]은 권력자가 되어 자례 마을을 지배하게 된다. 총과 대포를 싣고 지나가는 훈련 중인 군용차를 만난 셋째 쿵밍야오[孔明耀]는 군인이 되었다. 다만 애매했던 것은 막내 쿵밍후이[孔明輝]였다. 고양이를 만났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일종의 달력인 책력(冊曆)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자례 마을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착한 사람이었던 그는 책력에서 알게 된 정보로 파국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도둑질로 마을 첫 만위안호가 되어 자례 촌장 자리를 얻은 것이 쿵밍량이 자수성가(自手成家)하는 첫 걸음이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백 명이 살던 자례 마을을 발전시켜 촌장(村長), 현장(縣長), 진장(鎭長)을 거쳐 시장(市長) 그것도 중국의 대형도시인 직할시의 시장이 되었다. 수백 명이 살던 어떻게 보면 비전을 가진 리더라고 볼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허용되고, 그러한 행위가 장려되는 상황이라면 자례 마을이 자례 시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흘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쿵밍량은 직할시 승격을 위해 세계 최대의 공항과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철이 필요했다. 이를 일주일 내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셋째 동생 쿵밍야오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쿵밍야오에게 자신이 거느린 사설 군대를 동원해서 일주일 안에 이를 건설하는 대가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다리 5천 개와 손가락 만 개, 그리고 사흘간 자례 시민을 빌려주는 공문을 주었다. 그리고 별거 중인 아내 주잉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자례시의 승격을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직할시 승격에 성공했지만 그 끝은 파멸이었다.
“형수로서 하는 말인데, 대학을 졸업하면 자례로 돌아오지 마요. 나랑 둘째 형이랑 결혼한 이상 자례는 조만간 형과 내 손에 망할 거야.” [p. 176]
주잉이 막내 시숙(媤叔)인 쿵밍후이[孔明輝]에게 했던 말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셋째, 마술적 리얼리즘 혹은 신실주의(神實主義)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면 흔히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 이하 ‘마르케스’)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문학비평용어사전>(2006)에 의하면,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들의 특징은 “사실적인 것과 환상적이거나 마술적인 것, 시간적 흐름 기법, 꼬인 미로형의 서사와 구조, 꿈과 신화와 요정이야기들의 다양한 사용, 표현주의적이거나 심지어는 초현실주의적인 기술, 불가해한 박학다식함, 경이와 느닷없는 충격, 공포와 불가해함 등을 뒤섞고 병치한다”는 것에 있다고 한다.
라틴 문학에는 문외한이라서 이런 설명만으로는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해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러한 문학 사조가 라틴아메리카와 같이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독재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며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표현이 환상적이거나 마술적인 것의 도입으로 순화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검열과 작가의 양심 사이의 일종의 타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례진장 임명장을) 아홉 번을 읽었을 때 그는 책상 위에서 말라버린 아스파라거스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것을 발견했다. 그 아스파라거스는 날이 춥고 물이 부족해, 물을 주면 화분 속에서 물이 얼음 조각으로 변해 하릴없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밍량은 가늘고 자잘한 잎이 순식간에 다시 황록색을 띠는 것을 보았다. 아스파라거스에 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공문 두 부를 아스파라거스 위에서 흔들어 보았다. 그랬더니 말라버린 아스파라거스 잎이 후드득 떨어지고 가느다란 싹이 쑥쑥 올라왔다.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아스파라거스에게 공문을 읽어줬다. 그러자 아스파라거스가 그의 눈앞에서 뭉텅뭉텅 파래지더니 옅은 비취색을 뿜어냈다.” [pp. 190~191]
“밍량이 귀뚜라미를 보고는 돌연 정색하며 아이처럼 “전부 나오라고 해”하고 말했다. 귀뚜라미가 그를 보다가 풀잎에서 뛰어내렸다. 밍량이 소리쳤다.
“모든 곤충과 새들은 나와! 봄이 왔으니 모두 내 앞으로 나와, 모두 나와!”
“나는 쿵 시장이다, 모두 내 앞으로 모여!”
“나는 쿵 시장이다, 모두 내 앞으로 나와!”
매우 빠르게, 회랑 모퉁이와 5중 사합원의 단층집에서 수십 명의 비서, 정원사, 전기공, 수도공, 경비, 직원들이 우르르 나왔다. 모두 놀란 눈으로 허공에 서 있는 쿵 시장을 보았다. 아무도 무슨 일인지 몰랐다. 시장한테 뛰어가야 할지, 아니면 시장이 왜 그러는지 알아본 뒤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불안과 당혹이 가득한 얼굴로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중략 ~
정원의 참새들도 어디선가 날아와 풀밭과 나뭇가지에 앉아 짹짹 울었다. 다람쥐들도 숲속 깊은 곳에서 다시 시장 앞으로 달려와 오르락내리락 나무를 탔다. 텁수록한 꼬리가 제 몸통보다도 두꺼웠다. 귀뚜라미도 시장의 불호령과 봄날의 따스한 부름에 수천수만 마리가 몰려왔다. 풀에 올라서거나 누워 있다가 몇 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귀뚤귀뚤 울기 시작하자 수백수천 마리의 귀뚜라미가 따라서 울었다.
~ 중략 ~
시장 밍량은 정원의 조경석에 올라가 눈앞의 상황을 보고 자못 감격했다. 웃음을 띠었지만 눈물이 사방으로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자례가 그의 것이었다. 세상이 그의 것이었다. 곤충과 새조차 시장의 말을 들었다.” [pp. 567~569]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Macondo)라는 가상의 땅을 무대로 부엔디아 일족의 역사를 그렸는데, <작렬지>도 자례라는 가상의 마을을 무대로 쿵둥더 일족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이렇게 비슷한 구조에 앞에서 인용한 글처럼 사실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이 뒤섞인 <작렬지>는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작렬지>의 저자인 옌롄커(閻連科, 1958~ )는 자신의 글이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라면서 반발한다. 오히려 그는 신실주의(神實主義)라는 다른 용어를 내세운다.
그렇다면 신실주의는 무엇일까?
“신실주의는 독특한 문학 기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고 가려진 진실을 들추며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그려낸다. 또한 문학이 영혼과 정신(생활이 아니라)의 길을 걷도록 함으로써 깊은 곳에서 현실과 삶을 폭발시키는 핵에너지를 찾도록 한다.” [p. 656]
아무리 봐도 비슷한 얘기를 다르게 표현한 것 같은데……. 책장을 덮으면서도 마술적 사실주의와 신실주의의 차이에 대해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더 읽어보면 알 수 있을까?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자음과 모음으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