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재를 살아가는 직장인의 삶, 그 단면을 잘 보여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이 3가지가 있다.
첫째, 수평적 의사소통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실질적으로 수직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도록 변질된 부분이다.
기업들이 수평적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이름 사용 혹은 직급 파괴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카카오, W서울 워커힐 호텔(W호텔), 신한은행 등 여러 기업이 그러한 변화를 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판교 테크노밸리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영어 이름을 쓸 것을 요구하며,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스타트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대표부터 직원까지 모두 영어 이름만을 쓰면서 동등하게 소통하는 수평한 업무환경을 만들자는 취지” [p. 37]라고 얘기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물론 이름만 영어로 바꾸었다고 한 순간에 기업 문화가 바뀔 리 없다. 예를 들면, 주인공 김안나(=Anna, 이하 ‘안나’)가 다니는 회사처럼 “매일, 약속된 시간에, 선 채로, 짧게, 어제는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각자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에 스크럼 마스터가 전체적인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p. 36] ‘스크럼’이라는 프로젝트 관리 기법을 대표가 아침 조회처럼 여긴다. 또, 영어이름을 쓰면서도 “다들 대표나 이사와 이야기할 때는 “저번에 데이빗[대표]께서 요청하신……” 혹은 “앤드류[이사]께서 말씀하신……” ” [p. 37]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이면, 새로운 기법 도입이나 영어이름 사용이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 오히려 기업이 혁신을 추구한다는 것을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轉落)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둘째,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데 인트라넷에서 업무를 처리하면서 발생한 동료와의 갈등과 이를 해소하는 과정이다.
안나가 다니는 회사는 ‘우리 동네 중고 마켓(이하 ‘우동마켓’)’이라는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앱 서비스를 만드는 곳인데, 그녀는 프로그램 버그 수정 문제로 ‘진짜 막내’인 아이폰 앱 개발자인 케빈과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인트라넷인 트렐로를 통해 대화를 주고 받으며 갈등을 키웠다. 얼굴 마주하지 않고 건조하게 문자만으로 대화하는 것은 감정의 소통이 결여된 만큼 갈등 해소가 어렵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 나오는 안나와 케빈의 갈등은 바로 옆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사무실 건물 옥상에서 만나 그 동안의 갈등을 해소하기 까지 하니, 뭔가 의미심장해 보였다.
셋째, 대표의 소위 ‘갑질’이다.
카드회사 공연기획팀 차장이었던 이지혜는 러시아를 세 번이나 들락거리며 루보프 스미르노바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고 회장으로부터 특진을 약속 받았다. 하지만 공연 소식을 개인 SNS에 가장 먼저 올리지 못해 토라진 회장의 심술로 승진을 취소되고 공연기획팀에서 혜택기획팀으로 발령이 났다. 심지어 1년간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다. 물론 현실에서 직원에게 카드 포인트로 월급을 지급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다만, 2015년 현대카드에서 포인트 담당 임원에게 급여의 일부를 M포인트로 지급한 것처럼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임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합법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 대해 이지혜 차장은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일반 회사원들과 사고구조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나 행동에 의문을 갖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해야 돼요.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이상해져요.” ” [p. 50]라고 하면서 체념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그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굴욕과 절망에 굴하지 않고, 그녀는 직원가로 할인 받아 산 물품을 중고마켓에 팔아 포인트를 현금화해서, 나름대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거북이알’로 변신한다.
이런 일들 모두가 직장인의 일상을 짓누르는 일의 힘겨움이 아닐까? 물론 그런 가운데 소소한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거북이알에게 거북이들[람보(르기니), 마쎄(라티), 페라(리)]이, 안나에게 조성진의 음악이 그런 것처럼.
어쨌든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이런 식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직장인의 일상을 담담히 늘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