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사람인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의 81%가 사람이 싫어 퇴사결심을 한다1)고 한다. 심지어 심리학의 3대 거장 중 하나로 꼽히는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도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로부터 비롯된다”고 했을 정도다. 아마 그래서 서점에 가면 수많은 인간관계에 관한 책이 있고,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라는 책도 20만부 넘게 팔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적(私的) 관계에는 당당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면서, 서로 의무와 권리를 주고받는 공적(公的) 관계에는 주눅들어 아무 말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가수 양희은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에서
엄마는 딸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공부해라’, ‘성실해라’, ‘사랑해라’고 말한다.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딸은 엄마의 마음은 알지만, 자신이 노력해도 엄마가 그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재촉하는 것에 지친다.
“엄만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왜 엄만 내 마음도 모른 채
매일 똑 같은 잔소리로
또 자꾸만 보채
난 지금 차가운 새장 속에 갇혀
살아갈 새처럼 답답해
원망하려는 말만 계속해
제발 나를 내버려두라고
왜 애처럼 보냐고
내 애길 들어보라고
나도 마음이 많이 아퍼
힘들어하고 있다고
아무리 노력해봐도
난 엄마의 눈엔 그저
철없는 딸인 거냐고
나를 혼자 있게 놔둬”
분명 두 모녀의 속마음은 서로 아끼고 보듬어주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잠깐 만날 사람이라면 전력을 다해도 문제가 없지만,
장기적인 관계에선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상대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내가 지치는 것을 외면한 채 무리하면
어느 순간 좋았던 순간마저 잊게 되고,
축 처진 마음에는 관계에 대한 허무감과 미움이 들어선다.
컵에 물을 가득 채우면 쏟아지기 쉽듯이,
관계에 힘을 너무 들이면 오히려 망치기도 쉽다.
그래서 조금 더 할 수 있어도, 다음을 위해 멈추는 게 좋다.
오래 유지해도 지치지 않을 모습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돌아올 힘을 남겨두자.
그래야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다.” [p. 68]
어쩌면 노래 속의 두 모녀도 상대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내가 지치는 것을 외면한 채 무리하다가 관계가 다소 어긋난 것이 아닐까?
반대로 클라이언트의 부당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침묵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단호하고 당당하게 행동해야 할 때, 이것이 현실이라며 오히려 체념하곤 한다.
아마도 그래서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일반적으로 ‘을(乙)’에 해당하는 계약직 미스 김[김혜수 扮]의 행동에 많은 시청자들이 쾌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할 당시, 터무니없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동료들을 위해 단호하게 거절하는 부분도 다소 강도는 약하지만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가끔 최저 시급의 절반에도 못 미칠 금액으로 작업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고,
무제한 이용권이라 생각하는지 추가 작업을 계속해서 요구 받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렇게라도 해서 돈을 버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직 굶어 죽진 않겠다 싶으면, 결국에는 거절하곤 했다.” [p. 145]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답게, 편안하게 관계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구도 타인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한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편안한 관계를 위해선
내가 편안할 수 있을 만큼의 경계와
상대가 편안할 수 있는 만큼의 허용치가 필요하다.” [p. 211]
이렇게 말하면 무척 쉽게 보이지만, 막상 실제로 경계와 허용치를 설정하려면 어렵다.
왜냐하면,
“관계는 두 사람이 하는 공놀이와 같기에
서로 주고받을 때 놀이이고, 즐거움이다.
상대는 내게 공을 던지는데 나는 조금도 받아치지 못하면
그때부턴 놀이가 아닌 폭력이 되고
상대는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p. 204]
이렇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분노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화를 무조건 틀어막기만 해선 안 되지만
계속해서 터져 나온다면 그것 역시 문제다.
언제나 잠겨 있는 수도꼭지도,
아무 때나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도 망가진 건 똑같다.” [p. 207]
결국 경험을 통해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발견하는 것이 나답게 행복해지는 길인 셈이다. 굳이 다른 이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남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다른 모습을 보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내가 편안할 수 있을 만큼의 경계와 상대가 편안할 수 있는 만큼의 허용치를 유지한다면, 이 복잡한 세상을 나답게, 그리고 좀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제목처럼,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말이다.
* 이 리뷰는 다산북스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 권연수, “직장인 81% ‘사람 싫어’ 퇴사 결심, 직장 내 인간관계 갈등 원인 1위는?”, <조선일보>, 201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