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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

[도서] 이적의 단어들

이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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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시골 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책.

생각은 별과 같는 생각을 한다. 늘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것. 늘 많지만 그 중에 유독 빛나는 것이 몇 안 되지만 있는 것. 스쳐지나가는 번뜩이는 것들을 적어두지 않으면 그대로 스쳐지나가는 것. 그래서 휴대폰 메모장에는 앞뒤 맥락 없이 스쳐지나가던 생각을 잡아놓은 것들이 왕왕 어지럽게 널려있다. 그것은 앞뒤 맥락을 갖게 되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그렇게 맥락을 찾지 못해 붙잡은 손을 털고 나가버린 생각들도 꽤 많았다. 이런 생각을 잘 살리는 작가들이나 싱어송라이터들이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우주를 가지고 있다. 다만 서울 하늘 속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작은 별들을, 어둠에 익숙해져야 하나씩 더 볼 수 있는 그런 하늘인지 아니면 별이 쏟아지는 시골 은하수 같은 하늘인지의 차이가 아니려나.

좋은 생각이란 뭘까. 사실 노래를 듣다 보면 싱어송라이터들이 대단하고 드라마를 보다보면 드라마 작가들이 범접할 수 없는 사람들 같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어떻게 저렇게 남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지? 어떻게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반전에 충격받겠지?'하는 포인트를 잘 알지? 싶어서 대단한데 한편 더 대단한 것은 그 신박한 와중에 '그럴 수도 있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아서 공감 또한 잡아낸다는 것이다. 새롭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될 수 없지만 너무 멀리 새로운 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지 못한다. 아 맞다, 맞네 싶은 것들의 영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이 늘 대단하고 부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오랫동안 이적, 김동률, 윤종신의 노래와 가사들을 좋아했다. 자극적인 표현이나 컨셉 없이 잔잔하게 사람의 마음 속을 보편적이지만 신선한 표현으로 노래하고, 허튼 외국어를 남발하지 않아도 우리 말로 고즈넉하게 써가는 느낌의 가사들이 아름다워서.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그 가사들과 맞춰 보며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과 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좋아서 더 그랬다. 국어전공자로서 이렇게 평범한 언어들을 골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노랫말을 쓸 수 있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어쩌면 그들의 노래는 나중에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시조집처럼 오래오래 남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문학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사실 국어를 참 배운 사람들처럼 쓰는 이들의 노랫말이라 나는 문법 수업에 그 노랫말을 써오기도 했었다.

삶의 진리는 사실 대단한 것은 아니어서 마치 포켓몬의 상성을 깨닫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무 생각없이 상성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 몸만 좋은 사람은 멘탈이 흔들리는 게 약점이니 에스퍼로 공격하고, 멘탈은 악한 것이 흔드는 것이니 악이 에스퍼를 막는 건가보구나?"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순간, 사실은 다 설계되어있는 진리인데 나만 몰랐던 그것을 깨닫는 순간은 사실 내게는 단상 한 장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일인가 싶어 흘려보내버렸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순간이 떠올랐다.

마치 백일장처럼 아주 일상적인 단어들이 한 페이지에 쓰이고 관련 단상이 짧게 쓰인 책이다. 글을 먼저 읽고 단어를 보는 식으로 거꾸로 읽는 것도 추천한다. 문학에서 8할은 제목인데, 이 글의 제목은 뭘까를 추측하며 읽어보는 게 또 재미이지 싶다. 그저 스쳐가버렸을 수도 있는 번뜩이는 작은 생각들을 모아 다섯 가지 챕터로 분류하고 그 짜릿함을 공유하는 글들을 읽으며, 이게 이적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들이 단초가 되어서 하나의 새로운 노래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니 이적의 나지막하지만 개구진 목소리에 음이 입혀져 읽히는 느낌도 들었다. 별 거 아니지만 한 끗이 번뜩하는 생각들에 무릎을 치며, 아껴 읽고 또 거꾸로 읽고, 아무 곳이나 펴서 읽었다. 마치 정답을 점치는 책처럼.

아주 평범한 삶에서 길어올리는 예술가의 색다른 시선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과, 일상 속에서 문득 번뜩이는 생각들을 놓쳐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나도 오늘부터 혹여 번뜩이는 생각이 맥락없이 스쳐지나가거들랑 놓치지 말고 짧은 글을 하나씩 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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