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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꿈은

 

-도종환-

 

어릴적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 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 꽃 한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아이들을 속아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건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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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이 시의 노래(약간 개작된 노래가 있다.)가 머릿속과 입안에서 맴돈다.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노래인데, 그 후로는 언제 다시 들었는지 알 지도 못하는 노래인데 왜 자꾸 맴돌고 있는 것일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언제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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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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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 저도 그리 생각하고 대도시를 거부하고 시골로 왔었는데, 요즘은 완전히 산골 벽지 학교를 제외하고는 도시와 시골의 경계가 거의 없더라구요... 가만히 앉아서 대접이나 받고 싶을 만큼 그렇게 경우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스승이라는 자리 자체는 존중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걸 기대하기엔 세월이 너무 변해버린 것 같아서 못내 씁쓸합니다. 12년 전 첫 발령받고 학교로 오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덕분에요... 고맙습니다. *^^*

    2012.02.14 09:33 댓글쓰기
    • 카스트로 폴로스

      이 시가 생각난 것은 더나은내일님 블로그 방문 이후에요. 저야말로 더나은내일님 덕분에 잊고 있던 좋은 시가 생각났습니다. 전 이상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현실 속에서 이상은 계속 부서지더군요.

      2012.02.14 09:44
  • sssang

    제 어린시절 꿈이 교사였는데 교사가 안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내 자식 키우면서 합니다. 이 성격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을까..싶어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래도 선생님들이 이상과 현실속에 고민한다는 말이 고맙습니다. 고민하고 계시다는 것은 더 나아지리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석가모니가 말씀하셨다지요. 고통속에 고민마저 없다면 사는 의미에 무엇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좋은 시예요. 저도 오늘하루 빙긋 웃고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2012.02.14 10:41 댓글쓰기
    • 카스트로 폴로스

      현실과 이상 속에서 고민하지만 자꾸 기력을 뺏기는 것도 사실이죠.^^;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사실 그렇게 믿고 싶어요.)

      2012.02.14 18:06
  • 파워블로그 샨티샨티

    저는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하며 살고 있어 그나마 행복한데 그렇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제자들에게 전하며 교감을 나누며 살아가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이로 자리하고 싶은데 현실은 이상과 유리되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희망을 잃지 않으렵니다. 그마저 잃게 되는 날은 교단을 멀리 하는 날일 테니까요.

    2012.02.14 11:33 댓글쓰기
    • 카스트로 폴로스

      샨티샨티님같이 열정적인 선생님들만 있으면 아이들이 행복할거에요. 희망을 잃지 말아주세요. 희망이 있기에 꿈꿀 수 있잖아요.

      2012.02.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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