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완벽한 외모? 뛰어난 지능? 보장된 미래? 주변 사람들의 인정? 우리 사회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그렇다면 완벽한 외모와 지능, 보장된 장래를 가진 아이는 행복할 수 있을까?
[열 세 번 째 아이]에 나오는 시우는 완벽한 아이이다. 태생부터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맞춤형 아이로 태어났기에 부족한 것이 없고, 맞춤형 아이를 가질 자격 테스트를 통과한 만큼 부유한 집안의 아이이기도 하다. 첫 번째 맞춤형 아이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듯이 기존의 맞춤형 아이들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모델에 해당하는 열 세 번째 아이는 장차 그를 능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 아이다. 이런 기대도 시우에게는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 자신의 롤모델인 강선 박사가 성공했듯 자신도 당연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우는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조만간 장래가 결정되어 학교를 그만두기로 되어 있다. 그의 인생은 평탄했다. 그 날까지는....... 일상 생활 속에서 로봇이 일상화되어 있어 생활 전반을 로봇의 도움을 받는 생활을 하는 사회 속에서 로봇 과학자를 둔 시우는 항상 최신형 로봇이 주변에 넘쳐 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그런 환경이 시우에게는 무덤덤하기만 하다. 자신에게 조금의 애정을 받지 못해도 시우의 발 주변을 맴도는 애완견 로봇이 그저 귀찮기만 할 뿐이고, 어머니가 여동생이라고 데려와 함께 지내고 있는 로봇인 시아에 대해서도 애정도 미움도 생기지 않는다. 그냥 단순히 로봇일 뿐이다.
로봇을 괴롭히는 아이들도 이해가 안 된지만 로봇에게 애정을 느끼는 유나와 같은 무리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프로그램되어 있는 그대로 행동할 뿐인 로봇이다. 그렇기에 로봇은 주변의 당연한 존재이고 이상이 생기거나 망가지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시우의 어머니가 속한 연구팀에 감정 로봇을 개발하게 되면서 로봇에게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능이 생긴다. 그리고 당연히 시우에게는 감정 로봇 ‘레오’가 생긴다.
레오의 기억 속에는 시우와 함께 한 기억이 있어 시우에게 애정을 느끼고 가까워지고 싶어하지만 시우는 그런 레오의 가짜 기억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시우 본인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첫 만남에서 한 동안의 시간동안 레오가 인간같고 시우가 로봇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둘 사이에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레오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시우다. 학교의 친구들에게 차갑다는 소리를 들어도 시우는 그런 평가에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레오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 자신에 대한 위화감을 자각하기 시작하며 자신에 대한 추적을 시도하게 된다. 시우에게 있어 이것은 최초의 자의식이었으니 진정한 인간이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고 할 것이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슬픔과 분노에 대응할 원동력을 가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감정을 가진 로봇들은 로봇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고 싶어하며 그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고 레오 역시 그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아직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시우지만 시우는 레오가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허락하고, 사회에서는 감정형 로봇이 인간에 대항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그에 대한 대책이 논의되어 가는데 그러던 중 시우는 연구소에 몰래 잠입해 자신에 관련한 프로젝트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자신의 키도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냉정한 성격도 혼란 없이 넘어가고 있던 사춘기도 모두 태어나기 전에 결정되어 있었다는 점은 시우에게 큰 혼란을 준다. 그리고 다시 레오와 만나고 레오와 도피하게 되면서 시우는 슬픔과 고마움, 우정이라는 감정에 눈을 뜨게 되는데......
자신의 아이가 뛰어난 아이였으면 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맞춤형 아이는 행복하지 않다. 특히 시우의 경우 이성 지수를 지나치게 높여 놓았기에 잘 만들어진 로봇과 같은 아이이다. 그렇기에 어머니를 포함한 그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줄도 그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시우에게 감정을 찾아준 것은 레오다. 누구보다 시우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판단한 레오는 시우에게 파문을 일으켰고 시우가 인간으로서의 자각할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다워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아이들 다울 수 있도록 어른들이 포용력을 가지고 아이들을 수용해주며 아이들의 잘못을 엄하게 바로 잡아 줄 수 있어야지, 처음부터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아이를 꿈꾸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