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우리나라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출판되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책은 전국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 ‘정의 열풍’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문서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하더니 책의 내용, 저자, 그리고 ‘정의’라는 개념 자체 그 모든 것이 화제가 되었다. 대학생들, 성인들에게 불붙은 그 열풍은 지난해에는 중학생들이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할 정도로 널리 퍼져나갔다. 그 책의 열풍으로 인문학의 희망을 봤다는 기사도 나오곤 했지만 그 책의 열풍 속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염증이 담겨 있었음을 모두 안다.
정의가 아닌 부정이 득세하고 기득권을 잡고 있는 현실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난 그 책을 잡지 않았다. 지난 3년간 한창 공부하고 있던 내용이 있어서 여력이 없었기도 했지만 과거 경험상 베스트셀러라고 읽으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관심 자체가 생기지 않는 편이었다. 나중에 관련 전공자에게 이 책에 대해 물어보니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기에 더더욱 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는 이 책이 반년 넘게 주변에 있어서 언제든 빌려 볼 수 있었음에도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을 잡게 되었을 때 기대감과 함께 막막함을 느꼈다. 나름대로 대중 인문서라고 말할 수 있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은 대중서가 아닌 전문 학술서라는 것을 책의 서두에서부터 명확히 밝히고 있었고, 자유주의와 정의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서론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여러 철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정의는 서양 철학에 대해서는 일종의 두려움에 가까운 기피 증상을 보이는 나에게는 이 책이 쉽지 않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 책은 저자의 저서 중 가장 난해한 저서라고 한다. 맙소사!
센델이 비판하고 있는 의무론적 자유주의가 어떻게 성립되어 있는 것인지에 대해 센델은 자유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토대와 기본 권리로 인식하기에 이를 훼손하는 어떤 행위나 제도도 용납할 수 없는데, 의무론적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의무를 인간의 자유에서 찾고 이것이 어떤 가치보다 근원적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롤스의 정의 이론 역시 이런 토대에 있다고 하며 그를 비판하다. 때문에 자유주의 정의 이론의 한계가 있으며 그 대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책이 그가 20대 말에 쓰여졌다는 점을 명두에 둘 때, 그에게 ‘정의’라는 개념은 평생의 연구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의에 대해 접근해가며 센델은 칸트주의자와 롤스의 입장이 지닌 문제점을 비판한다. 센델이 주로 비판한 롤스에 따르면 원초적 입장은 우연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 좌지우지되지 않아야 하며, 개인의 이해관계로부터 멀어져야 하는데, 도덕적 관점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 없이는 어떤 의무론적 체계도 성립될 수 없다. 이런 설명은 자아의 우선성과 사회적 가치의 우선성을 지니기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자아와 다른 자아의 정의를 가지게 된다.
롤스는 개인의 자산과 능력을 인류의 공동 자산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런 롤스의 견해는 개인차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여러 의문점을 드러내기에 센델에 의해 비판 받는다. 또한 롤스의 사회 계약도 비난 대상이 되는데 자유주의와 사회 계약이 우연이 아니라 공정한 계약을 통해 책무나 의무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는 샌델은 책무와 의무를 산출하는 것은 특정 절차만이 아니기에 롤스의 이론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 정의와 선을 합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의와 선의 합치는 자아의 정체성에 영향을 받는다. 이 정체성은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고 비판받을 구성적 공동체 속에서 성립되어야 하며, 반성 능력이 중요하다. 이런 반성 능력이 있는 도덕적 주체야 말로 정의와 선을 합치할 수 있는 것이다.
읽으며 머리가 가끔 머리가 마비되는 듯 했다. 이웃분에게 간혹 토로했듯 건강 상태가 극도가 안 좋아진 상태에서 읽다보니 머리가 멍했기에 더 힘들었다. 책을 읽어도 서평을 쓸 수가 없는 상태가 이어지기에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각 장의 뒤에 요약본이 함께 하기에 헷갈리며 읽은 내용이 조금이나마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을 모르면 역시나 마찮가지일 뿐이기에 효과는 오십보백보에서 그나마 오십보로 줄여주는 역할이었다고 할까? 아무래도 대중서들을 먼저 찾아 읽어야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