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보니 많은 집에서 아이들을 위해 가족이 함께 야외로 놀러나가는 날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래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그래, 아이들에게는 저런 표정이 어울린다. 세상에 길들여져 어느 정도는 계산적이고 속물적인 어른들과 달리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표정을 가진 순수한 존재.
그런데 그런 아이들 중에는 보고 있으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의 죄가 아닌데 천행처럼 평생을 주변의 시선 속에서 아픔과 차별을 겪어야 할 아이들이.... 바로 장애가 있는 아이들 말이다. 과거에는 장애라고 하면 신체적 장애나 큰 정신적 장애가 있는 경우만 떠올렸지만 모체 속에서 환경 호르몬의 영향도 받고 태어난 탓에, 태어나서 초기 양육이 잘못된 탓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 중에는 기존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있다.
사회의 틀 안에서 보편적인 모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는 이런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게 좋은 공간은 아니다. 다름을 포용하기에는 아직 인식이 덜 성숙한 상태이다보니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경우에 여건이 허락하면 아이와 함께 외국으로 삶의 터전을 이동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시급히 장애인에 대한 정신적 성숙과 포용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아동용 동화책에는 장애를 다룬 이야기가 꽤 많은 편이다. [유진과 유진], [너도 하늘말나리야]로 유명한 이금이씨 역시 장애를 다룬 이야기를 몇 편 썼다. 그리고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가 바로 그런 작품 중 하나에 해당한다.
영무에게는 동갑내기 사촌누나가 있다. 2달 빠른 누나인 수아는 영무가 좋아하는 고모의 딸로 도시에 살다가 영무네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다. 수아가 전학 오던 날 영무는 예쁜 수아가 자신의 친적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고모의 부탁대로 자신이 수아를 돌봐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무는 몰랐다. 수아에는 제멋대로 병이 걸려 있다는 것을.
수아는 전학 첫날부터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한다. 수업 중에도 책을 읽고 사용하면 안 되는 담임 선생님의 컴퓨터도 만진다. 영무는 이런 수아가 당황스럽다. 처음에는 수아를 제지하려던 선생님도 나중에는 영무에게 수아의 생활을 책임지게 하고 수아가 잘못한 것은 모두 영무가 혼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가니 영무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제멋대로 병이 걸려있는 수아따위 귀찮고 미울 뿐이다. 그렇기에 영무는 친구 성남이를 시켜 몰래 수아를 괴롭히며 그 불만을 해소한다.
하지만 이런 영무의 잘못은 얼마가지 않아 발각되고 영무는 엄한 꾸지람과 함께 수아의 등하교까지 책임지게 된다. 현장체험학습도 수아와 함께 가는 것이라면 가기 싫다. 하지만 영무가 안가면 수아도 집에 보내려고 하는 선생님 때문에 영무는 그냥 현장체험학습을 가고 그 곳에서 수아를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 손을 끈으로 묶어 두었다. 하지만 너무 꽉 묶어 두었기에 화장실도 함께 가야했는데 그날따라 화장실에서 만난 선생님은 수아를 대신 봐주겠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느날 할아버지와 영무, 수아는 마당놀이를 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수아가 사라지고...
아동용 도서 중에는 마치 도덕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경우가 있다. 천사표의 착한 주인공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 속의 아이들은 어떤가? 순수하기에 어른보다 더 잔인할 수 있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시기가 아닌가. 이 책 속의 영무가 보이는 태도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예쁜 수아가 자신의 친척이라는 점을 자랑스러웠지만 수아의 제멋대로인 행동은 창피해서 외면하고 싶다. 수아의 잘못은 넘어가주는 어른들이 자신만 혼내면 화가 난다. 수아의 행동 때문에 자신이 혼나면 수아가 밉다. 그렇기에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아를 괴롭히고, 어른들에게 혼나도 그 미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영무가 수아에 대해 어떤 감정을 최종적으로 품게 되는지 어린 자녀와 함께 확인해 보는 것도 어린이날 좋은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