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꾸준히 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광활한 대륙의 이야기도 좋아한다. 역사 이야기도 좋아한다. 인물의 성장기도 좋아한다. 그렇기에 몽골을 배경으로 하는 유목민의 역사인 [조드]는 나에게 무척 매력적인 이야기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서평을 읽은 후여서 일까? 솔직하게 말해 잘 읽히지 않아 무척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읽어 나가야 했다. 분명히 매력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나지 않는 경험은 독서를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회의가 드는 경험이었으니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하나의 조드를 겪은 셈이었다.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몽골과 우리나라의 언어적 유사성에 대한 단편적 지식과 칭기스칸, 유목 생활, 그리고 현재의 몽골에 대해 대학 때 잠깐 조사했던 내용에 대해 희미한 기억. 그렇기에 몽골은 친숙함이 느껴지지만 [러브 인 아시아]에 소개되는 사연 속에서 또는 작품 속에서 단편적으로 나오는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몽골의 이미지가 전부인 유럽보다도 낯선 공간이다. 그나마도 몽골의 삶에 대해 책 속에서 만난 것은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 사이에 읽었던 김용의 [사조영웅전]에서 만난 모습이 가장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있었던 모습이었다.
한 때는 중국을 넘어 세계를 지배하려는 민족이지만 지금은 중국의 자치구로 존재하는 그 곳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음이다. 몽골에 관심을 가지는 잠재력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곳은 역사 속의 한 구절을 차지하는 곳이었다. 그런 그 곳이 소설로 되살아 났다. 책의 서두에 소개되는 몽골의 신화의 낯섦은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설레임이 되었다. 어느 민족의 신화든 신화 속에 담긴 상징성은 정사로 기록된 역사와 달리 많은 상징성을 가지기에 범상치 안는 느낌으로 읽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을 그들 민족의 모습이 소설 속에 형상화 되어 있을 때 그들의 호방함과 유목민족 특유의 기질은 그들을 비겁하지 않고 자신의 무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늑대 대장과 같은 강인함으로 느껴지게 하였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민족은 자연의 힘을 안다. 그리고 자연을 존중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지혜를 깨닫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어떤 문명보다 하늘의 위대함을 몸으로 깨닫게 되고 하늘의 뜻을 섬기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은 오만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하늘의 뜻을 가벼이 여기고 자신들의 욕망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려 노력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칭기스칸인 테무진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는 바로 이런 인간의 뜻이 영향을 미친 과정이었다. 아버지가 독살 당한 후 숙부에 의해 죽음의 위협을 겪고 초원에서 위태롭게 삶을 이어가던 그가 어린 아이에서 하나의 남성으로, 한 집안의 아들에서 한 집단의 우두머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험난한 가시밭길이기만 하다.
겨울을 나는 동안 조드를 만나면 가축들이 몰살을 당해 인간의 삶이 위험에 쳐하듯 테무진의 삶은 끊이지 않는 조드의 연속이다. 자연을 잘 읽고 조드를 피할 줄 알아야 생존할 수 있듯 테무진의 삶 역시 주변의 작은 조짐들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삶이었으니 그의 삶이 조드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하지만 유목민에게 조드는 위기이자 또다른 기회이니 조드 후에는 또다른 형태의 삶이 이어지는 것처럼 연달은 조드는 그를 성장시키고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초원으로 내쫓긴 어린 아이는 어엿한 한 집단의 수장이 되어 하늘의 뜻을 받게 된다. 허나 아무리 굳고 정한 나무라 해도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그 그늘에 많은 생명을 품기에는 아직 더한 시련이 남아 있으니 그가 영웅이 되는 것은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일반적으로 영웅인 칭기스칸에게 초점을 맞추지 그의 어린 시절에는 그다지 초점을 맞추지 않아왔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신선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북방 유목민들의 삶과 사고에 대한 접근 역시 사회학 저서를 보듯 자세했기에 새로운 문명을 접하는 느낌이었다. 단 하나 아쉬웠던 것은 낯선 만큼 용어와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각주가 조금 덧붙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