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퍼>, <사랑에 빠질 때 우리가 나누는 말들> 등 섬세한 심리 묘사로 많은 청소년의 사랑과 지지를 확보한 탁경은 작가의 단편소설집.
아이과 어른의 경계에서 시련에 빠졌을 때,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고 혼자라고만 느낀다면 마음의 문을 쾅 닫고 겨울잠을 자듯 세상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여기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에는 눈앞의 현실이 암울하고 희망찬 미래가 그려지지 않더라도 꿋꿋이 나아가는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지금은 생리 중」에서는 항상 완벽을 추구하지만 생리통 만큼은 견디기 어려운 유나의 말 못 할 시련이 그려진다.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생리’이야기를 남 앞에서 꺼내기는 어쩐지 부끄럽고 생리통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받기도 어렵다. 유나는 갑자기 시작된 생리로 난감한 와중에 자신을 비난하는 쪽지를 받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변 친구들을 모두 의심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앞에서만 친구인 척하는 사람이 가려지고 나면 진정한 친구들과의 우정은 더욱 더 끈끈해지는 법이다. 여기서 유나의 절친인 채희의 행동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생리에 대해 연구하고 인식 전환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좋지만 반 아이들 앞에서 “생리 터졌나 봐.”, “탐폰이 어딨더라?”하고 말하는 것은 좀 거북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속사정을 굳이 광고를 해야 했을까? 이런 나를 고루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의 영욱은 공부나 운동은 물론이고 게임 실력마저도 변변치가 않다. 닮고 싶은 어른도 없고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여기면서도 ‘하나쯤은 잘하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민트문」에는 늘 언니와 비교되는 현실을 잊고자 아이돌그룹의 멤버인 ‘오빠’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을 쓰는 데 몰두하는 민정이 있다. 팬픽 안에서 ‘오빠’는 가까이에 있고 ‘오빠’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인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오빠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모기」에서는 서로 신뢰하지도 애정하지도 않는 한 가족의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절대 뭉쳐지지 않는 콩가루 가족 같은데 모기를 잡을 때만큼은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발휘한다.
「동욱」에서는 누가 보더라도 막다른 길에 몰린 소년 동욱이 주인공이다. 동욱은 오랜 기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 왔고 학교에서는 친구 관계가 어려웠다. 유일한 친구를 위해 한 행동 때문에 하지 않은 절도를 뒤집어 쓰고 소년원에 가게 된 동욱은 그 곳에서 그를 위해 손을 내밀어주는 친구를 만난다.
기존의 청소년소설에서는 왕따 주동자나 폭력 가해자가 알고 보니 가정에서의 결핍 때문이었다는 설정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탁경은 작가님은 소설에서 우리가 정상 가족이라고 일컫는 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 소위 결손가정에서 꿋꿋하고 꼿꼿하게 잘 자라는 아이들을 많이 보여준다. 나는 그 점이 참 고맙다. 직접 선택하지 않은 가족 형태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외면이나 동정을 받을 이유는 없다. 가족의 형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고 어떤 형태의 가족 구성원으로서도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이 소설 속의 아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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