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이 형식의 리뷰를 써보기로 했다. 글에 대한 평가가 우선이 아닌 글에 대한 느낌을 우선하기로 했다. 철학하는 어린이 시리즈라고는 하나, 어린이들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니란 생각을 했기때문이다. 책 속에선 하나의 화두로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라 생각 할 수 있는 내 생각을 적을 뿐 이다.
내 성격은 굉장히 소극적이다. 가끔은 이런 소극적인 성격이 불만스러울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버스에서 누군가 내릴 장소를 묻는다. 마침 내가 아는 장소라면 말을 해 줄 수도 있으련만, 나는 속으로만 말을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만다. 생각해 보면 이건 고민할 문제도 아니지 않는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 주면 되는 것을. 그러나 소극적인 성격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타인들에게는 말을 쉬이 건네지 못했다.
그러다 온라인 블로거 활동을 시작했다. 지극히 더 개인적인 공간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누군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답을 해 주고 있었다. 막연하게 '함께'라는 단어를 떠올린 계기였다. 그리고 더 크게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준 사건이 일어났다. 올봄 대한민국을 강타한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가 그것이다. 예전에 나라면 친구들과 속상해하는 정도로 그쳤을 거다. 그러나 적극적인 이들을 시작으로 모이게 된 블로거들. 그들 중 누군가는 광고낼 신문사를 담당했고,다른 누군가는 광고시안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돈을 입금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주변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렇게 함께 한 결과, 작은 광고이긴 하지만 신문지상에 우리의 목소리를 함께 낼 수 있었다. 사는 곳도 다르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과 하나되어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실천을 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가끔 블로거님들께 책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책을 나누어 주게도 되었다.아주 작은 나눔이었고,실천들이었지만,나눔 속에서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운 기분이들었다.
그래서일까'함께 사는 게 뭐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나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눔엔 꼭 물질적인 나눔만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정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면서 스스로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철학하는 어린이 시르즈로 나온 <함께 사는 게 뭐예요?>를 처음 만날 때부터 알았다. 결코 어린이들만 읽을 책이 아닐 거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