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를 갈때마다 어김없이 만나는 돈대지만..나는 정작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더랬다. 돈대의 역사적 의미를 개략적으로 아는것으로 충분하다는 오만..이 자리했던 거다. 그러다 몇 해전 초지진에서 광성보 갑곶돈대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많은 돈대를 만나게 되었고(그때 정작 갑곶돈대까지도 가지 못했더랬다.^^) 각 돈대의 특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어렴풋 생겼더랬다. 2023년에는 강화도에 있는 돈대 전부를 만나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강화 돈대>를 만났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보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어느 돈대부터 만나야 할까, 생각만 하고 막상 책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시간이 흐르는 사이 연미정에서 갑곶돈대까지 걸었다. 연미정에 도착해서야 월곶돈대 안에 연미정이 있었음을 알았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한몸..이었던 거다. 어디를 가도 텍스트를 꼼꼼하게 살피지 않는다..마음으로 먼저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나름의 개똥소신을 갖고 있어서이다. 강화 북해안로..방향은 너무 가까운 북녘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지는 곳이다. 특히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다른 세상이다. <강화 돈대>에서 월곶돈대 편을 먼저 찾아 읽었다. 물론 돈대의 개략적인 설명을 먼저 읽은 후다. "갑곶돈대에서 초지돈대까지 10여 개의 돈대가 역사적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복원을 통해 국민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돈대는 그렇게 안보 관광지로 각광을 받다가 국내 여행의 붐이 일면서 또 한 번 지방자치단체의 볼거리로 선정되어 수난을 겪게 되었다.54개 돈대 중 10개는 멸실이고 20여개는 군의 소유이며 나머지는 버려지거나 고증 없는 복원을 거쳤다.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돈대는 몇 곳이 되지 않는다"/12쪽 몇 줄 안되는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받은 충격이 너무 크다. 초지진에서 화도돈대까지 걸으면서..돈대가 다 비슷하다고만 느꼈던 기억은, 나 스스로 무지해서 일거라 생각했는데 아닐수도 있겠다 싶다. 고증 없이 복원(?)되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다.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돈대가 극히 일부라는 점 역시 충격이다...돈대를 다 둘러 보고 싶었던 이유가 이제서야 설명되어지는 기분이다."연미정은 월곶돈대 안에 자리하고 있다. 돈대의 홍예문을 지나면 2그루의 느티나무가 정자 양쪽에 웅장하게 서 있다.족히 500년은 되었다고 한다.돈대 안은 넒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면 동벽과 남벽은 훼손된 상태로 성가퀴라 불리는 여장은 사라졌지만 곧게 쌓아올린 육중한 돌들이 온전히 남아 있다"/59쪽 '온전히 남아 있다'는 말에 안도의 마음이..월곶돈대을 오르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생긴다. 가슴이 시원해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너무 가까이 보이는 딴 세상의 풍경...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연미정을 배경으로 한 조선 후기 소설 <강도몽유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월곶돈대가 만들어진 이유, 혹은 이 돈대의 가치에 대한 설명이 아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관한 짧고 강렬한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남았다. "인조반정의 공신세력이 그 대상인데 광해군을 몰아낸 뒤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것이다. 공신들의 인사문제 군의 사적인 소유 백성의 제물을 빼앗는 행위,회의론을 내세워 임금이 치욕을 당하게 한 행위가 그것이다(...)"/66쪽 조선 후기 <강도몽유록>에서 여인들이 외쳤던 말들이.지금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월곶돈대를 만나고 와서 책을 마주하기 잘했다 생각한 순간 다음 순서가 갑곶돈대였다. 처음 갑곶돈대를 찾았을 때 막연히 공사중인줄 알았는데..이름만 남아있을 뿐이란 사실도 충격이고, 그렇게 된 이유는 더 충격이다. "정부는 대교건설을 핑계로 돈대를 흔적도 없이 제거해버렸다. 1970년 강화교 개통식 무렵 갑곶돈대와 주변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73쪽 그러니까 현재 갑곶돈대라 불리는 곳은 상상의 조형물이라는 거다.(맙소사...) <강화 돈대> 첫 여정에서 만난 돈대는 세 곳(?)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롯이 감상한 곳은 월곶돈대. 연미정에서 갑곶돈대로 가는 길 이정표로만 만났던 염주돈대..사실 염주돈대는 처음 들어보았다. 발목 상태가 오름길은 부담되어 다음 기회에 방문할 생각이었는데..그럴 필요가 없겠다. 염주돈대는 터만 남아 있다는 사실. 염주돈대와 함께 절이 있어 자그만 암자인줄 알고 지나쳤던 진해사는 돈대 축성을 위해 승려를 집결 시킨 곳이란 사실을 알았다. 절 위에 염주돈대가 자리했던 모양이다. 한국전쟁때 파괴되었다는 사실.분명 산길을 오를수 있는 이정표가 보였는데... 터만 남아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