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전 핵폭탄급 육아에 비하면 지금은 패턴도 잡혔고, 스킬도 익혔고, 아이성향도 어느정도 파악해서 훨씬 수월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정말 당황스러울 때는 아이와 매일, 24시간을 붙어있는데도 외롭다는 것, 그와 동시에 온전히 혼자 있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나는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건강한 엄마로 아이에게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것들이 아이였던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간절했던 부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바빴고, 아팠고, 사람과 세상에 치였고, 삶을 버거워했다. '너는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니.' '힘들어서 못 살겠다.'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하고 인생은 살만한 것이 못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깊이 박혔다.
나는 늘 사랑과 인정에 굶주리며 타인에게 지나치게 기대하고, 과하게 퍼주고, 내 생각만큼 보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면 미친듯이 화가 났다.
사랑받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네가 살아줘서, 네가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늘 듣고 싶었다. 오랜시간을 애정에 허덕이며 살았기에 내 아이에게만큼은 최고의 사랑을 퍼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남편이 아이 보는 것이 못 미덥고,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버거웠다. 어느날, 기질이 섬세하고 예민한 딸아이에게 "다른 친구들은 다 하는 걸 왜 너만 안 해, 넌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니!"라고 화를 내고 있었다. 친정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거기서 한 뼘도 자라지 못한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때때로 영혼에 각인된 결핍은 사람의 전생애를 지배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털어내지 못한 과거의 앙금들과 나의 성급함과 서투름으로 끊어졌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내가 나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았어도, 내가 나를 조금만 더 돌봤어도 과거의 실수들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우리는 자기 문제에 대해 상당 부분 심리적인 눈멂 상태에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의 권위자인 프로이트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대부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때문에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상담과정에서 상담자와 내담자가 합심해서 문제의 근본원인을 찾아내고 내담자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담자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과 단절은 "충분한 애도"과정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
프로이트는 과거의 후회와 상처들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오직 나를 위해 울라"고 조언한다. 성급하게 문제(현상)를 해결하려 달려들거나 상처에 약을 덧바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숨어있던 상처를 발견하게 해서 통증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아프면 참지말고 울라고 한다. 내 몸과 마음이 말하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전심을 다해 들으라고도 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언제지?'
엄마의 삶은 엉엉 울며 퍼져있어서는 진행이 안 된다. 장도 봐야 하고 애 밥도 차려야 하고 때되면 씻기고 나들이도 갔다가 재워야 한다. 틈틈이 집안일도 해야 하고 내 밥도 먹어야 하고 쪽잠도 자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또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너무 외롭고 고단하고 미칠 것 같은 순간에도 참았다. 아이는 죄가 없으니까. 그냥 나 하나 입 꾹 닫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보니 눈물도 마르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감정이 죄다 말라버렸다.
"우리는 이제 성장했다. 무력했던 어린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억눌렀지만 억압된 것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애도의 과정을 생략한다고 해서 상실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이제 어떤 것들이 눌려 있는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왜 눌려 있는지를 차근차근 알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순수하고 천진했던 그 마음을 버리고, 가면을 쓰기 시작했을까. 내 본연의 모습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어떻게하면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애도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해가는 것이다."
<상처받은 나를 위한 애도 수업>은 그간 내가 외면하고 억누르고 있었던 과거의 실패들을 직면하게 한다. 그래서 몇 번이나 숨고르기를 하며 책장을 넘겨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잊었던 상처들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나를 위해 전심으로 울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된다.
이제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