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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나에겐 내가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으며, 나를 소멸시킬 권리도 있고. 또한 나를 내가 아닌 나로 바꿀 수 있는 권리도 있다.

단,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워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모든 것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아니다. 사회가 존재하고 가족이 있고, 만일 그런 모든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은 단 하나의 유일한 존재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결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없는 우리에겐 그런 권리가 없으며, 이는 결국 거짓이 된다.

 

고맙게도 핀쳐는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경멸하며 조롱한다. 충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동시에 우리의 눈을 즐겁게 만들고 있었으니, 우리의 상상력은 극단에서 무시를 당하고 그가 주는 CF적인 이미지의 놀라움에만 경탄하게끔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하필이면 그가 자기 자신을 파괴하면서도 스스로의 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만들었던 것일까? 왜 그는 그가 행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억압, 규제, 통제를 내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닌, 핀쳐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것들을 많이 알려주고 있다. 최대한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끌어올리는 것! 그것의 필요성에 대해 열심히 말하고 있었으니, 바로 여기에서 그 이유가 발견된다. 즉, 직장에서 상사에게 욕을 먹어가면서 마치 자기 자신은 기계 속 어딘가의 부품인 것처럼 강요당하고 행동하고, 지시받고 이행하는 그런 뻔하디 뻔한 체계적인 움직임에 그저 몸을 내맡기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으니 우리는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우린 모두가 너무도 평범한 이름을 지닌 '잭'처럼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타일러'가 되기는 포기한 채로..

 

물론 그것이 폭력성에 결부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폭력이 지니는 그 짜릿짜릿한 느낌! 바로 그런 느낌을 지녀보라는 것이니, 그냥 얌전히 굴러다니는 것보다야 가끔은 폭주도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 자신의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자, 이제 당신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당신은 '잭'이 될 것인가, 아니면 '타일러'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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