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초등학교 입학 예정인 아들은 벌써 몇차례 집을 혼자 본 적이 있다. 아들은 유치원을 안가기 때문에 항상 동생의 어린이집 등원 시간에 맞춰 준비하고 같이 나섰다가 그 길로 도서관으로 향하거나 장을 보러 가거나 그도저도 아니면 동네를 한바퀴 돌아 집에 들어오기도 한다. 가끔 감기에 걸려 몸이 안좋거나 피곤하거나 미적거린다고 준비가 덜 되면 아들은 집에 혼자 있기도 한다. 그럴때면 항상 벌써 닫힌 현관문 너머에서 "엄마~ 무서워~ 빨리와~~"라고 몇번을 소리치는지 모른다. 처음엔 아들이 걱정되기도 해서 텔레비전을 틀어주기도 하고 후다닥 날다싶이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그게 몇 번 반복되니까 아들도 조금 익숙해졌고 이제부터 조금만 더 시간을 늘려보자 싶어 가까운 슈퍼에서 장을 봐서 돌아가기도 했다. 한 날은 아들이 옷을 꺼내 입고 큰길까지 나와 있은 적도 있는데 대부분의 날엔 내 스마트폰으로 아들이 전화를 여러번 걸어온다. 걸려 오는 족족 다 받아주고 무섭지 마라고 이런저런 얘기도 주고 받고 했는데 어느날엔 전화 한통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날은 아마도 저 좋아하는 놀잇감에 빠져있는 날이리라.
그렇게 해서 아들은 혼자 집을 볼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도 "무서워~무서워~"하면서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올 때 맛있는거 사오세요~~"라고 제법 여유롭게 어리광 섞인 부탁도 할 줄 안다.
저 나이에 집에 혼자 있는게 얼마나 무서울까? 그런 생각을 사실 많이 해보지 않았었다. 이런 주제를 다룬 그림책을 따로 본 적이 없었는데(밤에 혼자 자는게 무서운 친구들 이야기는 몇 번 본 적 있지만) 이번에 이 책을 만나고서 새삼 진지하게 그동안의 아들의 [혼자였을 때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되니까 혼자 집 보는 정도야 당연하다!!고 아무 의심없이 단정지어버렸고 게다가 왈가닥 개구쟁이 내 아들 아닌가? 옆집 누구는 못해도 이 아이는 잘할거야!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그 믿음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들은 아직 무서울게 많은 [유아] 졸업반이다. 책을 읽으면서 엄마는 속으로 '아들, 너도 많이 무서웠겠구나... 그리고 책 속 주인공 아짱만큼 씩씩하게 빈 집에 조금 적응을 해주었구나....'라고 생각해본다.
"할머니께서 몸이 편찮으신 모양이야.
엄마가 가서 어떠신지 잠깐 보고 올 테니까,
혼자 집에 있을 수 있겠니?"
"네,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고 야무지게 대답하는 아짱!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싫다며 같이 간다고 따라 나서고 무섭다고 법석일 것이다. 난 다시 한번 "네, 할 수 있어요."라고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읽어준다. 아이들은 점점 아짱이 되어가고 실제라면 야단법석일 이 장면인데 그림책 속에 들어가 아이들도 덩달아 "네~ 할 수 있어요."라고 차분하게 엄마를 보내준다. 그림책 속에서 아이들이 못할게 도대체 무엇이더냐..엄마가 나가고 조용해진 집 안에서 아짱이 도넛을 먹으면 우리 아이 둘도 텅 빈 집 안에서 도넛을 먹고 , 아짱이 인형과 대화를 나누면 우리 아이 둘도 자기들만의 인형과 대화를 나누고, 아짱이 블럭을 쌓다 지쳐 책이라도 보면 우리 아이들도 블록도 쌓고 책도 본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 주방 어디선가 딸그락, 삐걱,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똑 떨어지는 순간, 주방 도구와 채소들이 눈을 뜬다. 꿈이라 할까, 어쩌면 아이들이 쉽게 상상할수도 있을법한 설정같기도 하다. 하지만 주방 도구와 채소들이 살아난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아짱은 살아 움직이는 주방 도구와 채소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고 무서움을 잊어버린다.
"할머니께서는 괜찮아지셨어.
그리고 아짱한테 고맙다고 하셨어."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아짱에게 말한다. 올 해 8살 아들이 여기서 뜬금없이 "할머니가 왜 고맙다고 해?"라고 물어본다. "아짱이 혼자 씩씩하게 집에 잘 있어줘서 엄마가 얼른 할머니께 가서 병간호도 하실수 있었던 거지. 아짱을 데리고 갔다면 갈 때 시간도 많이 걸릴지 모르고, 엄마는 아짱도 봐야하고 할머니도 봐야하니까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잖아. " 아들은 이런 상황의 감사에 대해 이해를 했는지 별 말 없이 다음 장면을 기다린다. 나는 이런 간접 경험이 너무 좋다. 참 소중하다. 그리고 그걸 책을 통해서이지만 이해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이런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림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집에 돌아와 배고플 딸을 위해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의 손에 맞춰 주방 도구들은 척척 움직여준다. 아짱의 눈에는 냄비에서 모락모락 삐져나오는 김도 냄비의 웃음으로 보인다. 혼자 집을 보는 무서운 시간을 상상력을 동원해 즐거운 모험으로 승화시킨듯하다. 물론 아이들에게 당장 이렇게 혼자 집을 잘 보는 아이로 되길 바라진 않는다. '혼자 집을 보는 것이 아짱처럼 재미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잠깐 느껴준다면 그걸로도 족하다. 그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마지막 즈음에서 아이들은 눈도 입도 손도 사라진 주방 도구들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며 어디하나 눈이 남아있지 않나, 채소들이 멋대로 움직여 자리를 이동하진 않았나 숨은 그림 찾듯이 뒤져본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로 오히려 낮에 혼자 있기 무섭고 밤에는 가장자리나 안방에서 자기 무섭다는 아들을 봐서 아마도 살아난 주방도구와 채소들 그림이 꾀나 충격적이었나보다. 여느 무서운 괴물 그림보다도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