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쯤이었던것 같은데, 어느날 젓가락질의 요령을 완벽하게 습득한 날이었다. 그 날은 밥상이 준비된것도 아닌데 젓가락을 들고와 혼자 허공에 열심히 젓가락질을 해댔다. 그래! 이렇게 하는 거야! 이게 정말 완벽한 젓가락질인것 같아! 허공에 대고 해보면 해볼수록 손가락들 각자의 역할이 분명해지고 근육의 조절정도라든지 각도라든지 완벽한 비율로 젓가락질이 완성되었다. 어린 마음에 [젓가락질 대회에 나가면 내가 1등이야!!! 우리집에서도 내가 제일 잘해!] 이런 생각까지 했는데 도대체 그런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수 도 없고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이제는 떠올릴때마다 부끄러움도 함께 동반한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그 땐 그리 유난스럽게 생각했는지.....
내가 은밀하게 가지고 있는 그 자신감과 동시에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싹 날려준 책이 한 권 도착했다.
[쉿! 어른이 되기 전에 해 봐야 할 101가지]이다.
요즘 아이들은 유년기부터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정해진 커리귤럼에 따라, 엄마가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 바쁘다. 유년 시절에 맛보아야 할 많은 추억들이 [학습]이라는 녀석에게 뒤쳐지고, 밀리고 말았다. 학습 이외에 취미로 하는 악기든, 스포츠든, 미술도 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학생 때 시험을 잘 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두는 공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때도 많다.
7살, 9살 두 아이를 그렇게 학습의 노예가 되지 않게 키우려고 나름 노력하는 나이지만 가끔 이 교육구조 속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라고 느낄때도 많다. 그러면 다시 아이들을 딴 눈 팔지 못하게 다잡고 학습을 시킬 때도 있다. 그러나 배움에도 때가 있듯이 아이들의 유년시절의 추억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이 책에서 말하듯이 어른이 되어서 시도하면 시시하고 재미없는 일들, 그래서 지금 저 나이에 꼭 맛보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내용들을 스스로 해보았던것 같다.
시간이 많아서였겠지... 지금처럼 아이들이 늦게까지 스케줄대로 따라야했던게 아니니까..
마음의 여유도 많아서 심심했겠지... 지금처럼 하루치 학습 분량이 그 날 하루를 꽉 채우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혼자 해보려는 의지도 많았겠지....지금처럼 부모님이 자신들의 인생을 설계하고 책임지려해서 아이들이 무기력하진 않았으니까....
나부터도 그렇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어떻게 유년시절을 보내야 잘 보내는것인지 혼돈이 올 때가 많다. 요즘은 학습이 아니면 게임... 어른들은 아이들과 싸우기 바쁜것 같다. 적당히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 우리집은 잘 해나가고 있어요~라고 몇몇은 말하지만 그런 아이들이라고 과연 제대로 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을까? 아이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잠시 내리고 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들만이라도 같이 해보았으면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서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라고 생각해주면 더없이 좋겠지만 지금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요런 책들의 도움도 절실할 것 같다.
이 책이 도착했을 때 하교 후 좋아하는 쿠키런 어드벤처를 보고 있던 아들 옆에 이 책을 살짝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보던 책을 끝내고 뭔가 싶어 뒤적이는 아들......정독이 아니라 대충 그림만 보면서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던 아들이 어! 나 영어로 10까지 아는데~~~하면서 어눌하게 원,투,뜨리,포~~~ 중간에 발음이 영 어색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텐까지 가더니 자기는 외국어 하나는 안다면서 호들갑이다. 초2지만 아직 영어를 배우지 않은 아들이 텐까지 기억해내다니 그것도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가 일본어를 좀 하니까 다음번엔 일본어 10까지 외우기에 도전해보자라고 훈훈하게 마무리하며 아들은 곧장 책을 덮어버렸다. 눈에 보이는 곳에 항상 책을 올려두고 우리는 그날 그날 생각나는 페이지에서 멈춰 하나씩 도전해보기로 했다. 호기심 많은 아들은 이 책에서 몇가지는 벌써 해본것도 있다. 그렇게 어렵지 않으나 요령을 요하기도 하는 일들까지 있어서 가끔은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을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젓가락질을 완벽히 했다면 나는 그렇게 세상을 얻은듯한 자신감을 가지지못했을 것이다. 작은 일에도 많은 감정이 밀려오는 어린이였기에 젓가락질대회에서 1등하고 공주처럼 왕관을 쓴 나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아직도 밥상에서 젓가락질 할때마다 왕관을 쓴 1등이다.